"한국 좋다고 이런 일까지…" 요즘 日 20대 여성들 붐비는 곳
입력
수정
"서울 가고 싶어 '도한놀이'""(코로나19 기간 동안) 신오쿠보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음식을 먹는 '도한(渡韓)놀이'를 해 봤어요. 다시 서울에 가서 한강에서 농구를 해 보고 싶어요."
도쿄 여성들 '로망' 된 한국
24일 저녁 도쿄 미나토구 포트시티 다케시바 포트홀에서 만난 가와가츠 사야카 씨는 서울 유학을 꿈꾸고 있었다. 2003년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 바람이 일본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한국에 가지 않고도 한국에 간 것처럼 즐기는 '도한놀이'가 유행이다. 한국 음식점이 몰려 있는 신오쿠보 거리에는 이들을 겨냥한 한류 가게들이 즐비하다.신오쿠보 외 지역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에서도 한국어로 된 각종 과자와 젤리가 제일 앞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풍경이 아주 흔하다. 현지에 거주하는 일본 전문가 이요한씨는 "'메다마쇼힌(目玉商品)'이라고 부르는 가게 앞 특가할인 상품 코너에는 반드시 한국 젤리와 과자가 있다"며 "한국산이 아니라도 한국어가 일단 들어 있어야 인기를 끈다"고 설명했다.
한일 갈등에 코로나19가 겹친 지난 3년 동안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2016년 230만명에 이르렀던 방한 일본인 관광객 수는 2019년 327만명으로 최고치를 찍었지만, 2020년에는 43만명으로 주저앉았고 2021년엔 1만5000명에 그쳤다. 문은 닫아 걸었지만 젊은 일본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국 여행을 희망하는 수요는 꾸준히 이어졌다. 비빔밥과 떡볶이를 먹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치맥이나 소주를 즐기는 문화가 생겨난 배경이다.
"퍼스널 컬러 테스트 꼭 해봐야죠."
최근 코로나19 영향이 줄어들고, 양국 관계가 개선되면서 관광객 수는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다. 지난해는 30만명, 올해는 1~4월간 48만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2위(9.3%, 미국이 17%로 1위)다. 2019년 수준으로 돌아가진 않았지만 회복세가 뚜렷하다. 지난 24일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도쿄에서 개최한 서울 관광 프로모션인 '2023 서울 에디션 인 도쿄' 행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뚜렷하게 느껴졌다. 행사 참석 신청을 안내하는 '비짓 서울'의 일본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좋아요'와 '공유' 등이 54만건이나 쏟아졌다. 1만명이 신청해서 700여명이 추첨에 선발됐다.선발된 이들을 현장에 온 순서대로 입장시켰기 때문에 23일 밤부터 24일 오후까지 포트홀 주변에서 노숙을 하며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일본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한 비투비 팬들이 많았다. 푸른 색 응원봉을 들고 있어서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본 행사가 치러지는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서울의 홍대, 성수, 강남, 을지로 등을 콘셉트로 꾸민 각 코너에서 스탬프를 찍어야 했다. 도한놀이라는 표현에 빗대어 도(渡)서울 놀이(서울에 건너가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을지로에선 한국 음식의 불닭볶음면을 끓여 먹는 영상, 삼겹살을 굽는 영상 등을 담은 ASMR이 눈길을 끌었다. 강남에서는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보고, 성수 코너에선 립글로스를 직접 만들어 자신의 얼굴색에 맞추어 보는 '퍼스널 컬러 테스트' 코너가 큰 인기였다.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는 "일본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서울거리를 재현하고, 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과 함께 서울을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행사는 6시부터 시작됐다. 관객들은 보아의 '넘버 원'부터 엑소의 '으르렁' 등을 거쳐 BTS의 '버터', 뉴진스의 '하입보이'에 이르는 K팝의 계보를 짧은 공연으로 엮어 만든 K팝아이돌 패션쇼를 감상했다. 오래 된 노래들에도 적잖은 이들이 멜로디와 춤을 잘 알고 일부 따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장 배경화면에는 서울 광화문 명동 을지로 강남 등의 모습이 중간중간 등장해 '서울관광'을 홍보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셰프 복장으로 깜짝 등장해 서울 왕복 항공권 등을 추첨으로 나눠주는 코너도 있었다. 오후 7시20분경 비투비, 권은비, 클라씨 등 아이돌 무대가 시작되면서 관람객들의 즐거움은 절정에 달했다. 도쿄 에도가와 구에서 온 오오니시 에미(45) 씨는 딸 오오니시 미호(17) 씨는 '클래시(클라씨) 형서'라고 쓴 큰 손부채를 만들어왔다. 에미 씨는 "(2022년 MBC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클라씨를 선발할 때부터 딸과 함께 좋아하기 시작했다"며 "비짓 서울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행사 소식을 보고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이날 행사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아직은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가는 수가 일본 사람들이 한국으로 오는 것의 3~4배 수준"이라며 "엔저 현상에도 불구하고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으로 많이 올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또 "일본 외 다른 나라에도 아시아의 중심도시로서 서울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