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머의 연주는 늙지 않는다, 다만 깊어질 뿐

소리의 풍경화

KBS교향악단과 첫 협연
초반엔 활 컨트롤 주춤했지만
점차 안정적 연주로 심금 울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운데)가 지난 2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KBS교향악단(지휘 요엘 레비)과 협연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
지난 2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의 ‘소리의 풍경화’ 연주는 현존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인 기돈 크레머를 협연자로 초청해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

크레머는 1980년대부터 솔리스트 또는 앙상블 리더로 꾸준히 내한 무대를 선보였다. 하지만 국내 정규 교향악단과의 협연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의 나이와 이력을 감안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이날 지휘를 맡은 요엘 레비와의 협연도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최근 들어 KBS교향악단은 레비를 만나면 유독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는데, 때로는 그가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이었던 시절보다 더 멋진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1부 첫 곡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이었다. 하필 러시아의 용병집단 바그너그룹이 반란을 일으켜 모스크바를 향해 진군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라 공교로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작품과 연주는 그런 일과 무관했다. 바그너의 서곡 중 가장 유명한 이 작품에서 KBS교향악단은 기대 이상으로 탄탄한 연주를 들려줬다.

비록 시작 부분에서 호른 앙상블에 약간의 얼룩이 지긴 했지만, 금관부가 도맡는 ‘순례자의 합창’ 선율은 시종 풍부하고 안정감 있었다. 중후함과 현란함을 오가는 현악부의 움직임도 효과적으로 처리됐다. 특히 ‘베누스베르크’의 관능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중간부에서 레비는 왼쪽으로 몸을 돌린 채 제1바이올린에 집중해 그 현란한 움직임을 극도로 치열하고 생생하게 부각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2부 프로그램인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불새’ 전곡은 더욱 멋진 호연이었다. 레비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순음악적 접근을 통해 작품 특유의 리드미컬한 묘미와 다이내믹한 역동성을 부각하고 악단의 기능미를 극대화하는 방향을 지향한 듯했다.

그 덕분에 ‘카슈체이 일당의 춤’ 장면을 비롯한 역동적인 장면들의 앙상블적·음향적 쾌감이 대단했다. ‘불새의 춤’처럼 리듬감이 도드라지는 장면들은 특히 매력적이었다. 다만 발레극의 흐름상 각 장면의 전환부에 해당하는 대목이 너무 평탄하게 처리된 감이 있어 극적 내러티브의 전달 면에선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크레머의 협연도 기대에 부응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슈만 만년의 걸작인 ‘첼로 협주곡 a단조’의 바이올린 편곡판은 크레머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곡인데, 역시 그의 연주는 남다른 감각과 감흥, 오묘한 깊이를 아우르고 있었다. 연주 초반에 활의 컨트롤이 잠깐씩 흐트러지는 등 어느덧 칠순을 훌쩍 넘긴 거장의 오늘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지만, 어쩌면 그로 인해 더욱 특별한 연주를 들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연주가 진행되면서 기술적인 면은 안정돼 갔고, 크레머는 차분한 흐름과 겸허한 어조로 악곡을 채색해 나갔다. 바이올린의 예리함과 화려함을 완전히 은폐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에 비해 첼로의 중후함과 은근함에 한 걸음 더 다가서 있는 연주였다고 할까. 30년 전 쇼스타코비치 편곡판을 선택한 이 곡 최초 음반은 물론이고,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 7년 전의 부다페스트 실황보다도 몇 단계 여과된 표현들이 그윽한 감흥을 자아내며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연주를 마친 크레머는 “우크라이나의 희생자들을 위해서”란 멘트에 이어 조지아 작곡가 이고르 로보다의 ‘레퀴엠(진혼곡)’을 앙코르로 들려줬다. 소절마다 깊은 아픔과 슬픔, 탄식과 고뇌가 배어 있는 곡과 그의 절절한 연주는 슈만의 정서와도, 격변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류의 내면과도 공명하고 있었다.

커튼콜.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지만, 크레머는 정중히 예를 표하면서도 환하게 웃지 않았다. 등장할 때와 퇴장할 때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심지어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관객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혹시, 연주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서였을까. 이미 오래전 지고의 경지에 도달한 노거장은 이제 그 너머의 지평선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