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부 함께한 갤러리 2만3000여명, 모든 샷의 주인공이었다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최종라운드

"수백만원짜리 레슨 받는 기분"

가족·커플에 선수 팬클럽까지
명품 스윙·명승부 직관 위해
더위에도 역대 최다 갤러리 몰려

열띤 응원전, 대회 또다른 재미
선수 가리지 않고 "굿샷" 외쳐
25일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에서 열린 KLPGA투어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챔피언조의 허다빈이 퍼팅을 하고 있다. 포천힐스CC= 이승재 한경매거진 기자
대한민국 최고 골퍼들이 펼칠 명승부를 ‘직관’(직접 관람)하겠다는 골프팬들의 열정 앞에 불볕더위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25일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에는 이 대회 역대 최다인 2만3000여 명의 갤러리가 몰렸다. 더위를 피해 TV나 유튜브를 통해 대회를 시청한 골프팬도 많았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대회 때마다 명승부가 펼쳐지다 보니, 골프팬들 사이에서 ‘꼭 챙겨봐야 할 대회’란 얘기가 돌 정도”라고 말했다.

손풍기·우산 들고 18홀 완주

이날 포천의 기온은 최고 32도에 달했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장마를 앞두고 50%에 육박하는 습도는 체감기온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그래도 포천힐스CC에는 아침 일찍부터 갤러리의 발길이 이어졌다. 주최 측은 갤러리들을 위해 대회장 입구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나눠줬다. 이날 7000개를 준비했지만, 오전 11시에 동났다.무더위 예고에 갤러리들은 만반의 준비를 했다. 머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올렸고, 손에는 형형색색의 골프우산을 들었다. 손선풍기와 얼음스카프를 챙겨온 갤러리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각 홀 티샷 구역과 그린에서는 선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다들 손선풍기를 껐다.

이번 대회 3라운드를 모두 직관한 갤러리도 적지 않았다. 이가영(24), 허다빈(25), 리슈잉(20)이 맞붙은 챔피언조의 경기를 내내 따라다니던 50대 갤러리 하모씨는 “첫날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왔다”며 “선수들의 시원한 샷을 직접 보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가족 단위 갤러리도 많았다. 30대 김승환 씨 부부는 다섯 살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며 경기를 관전했다. 그는 “부부가 함께 골프를 즐기는데 언젠가 아이와 같이 골프대회에 오는 게 로망이었다. 오늘 그 꿈을 이뤘다”며 환하게 웃었다.여자친구와 함께 대회를 찾은 황태연 씨(31)는 “박민지 프로가 스윙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충남 보령에서 올라왔다.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수백만원짜리 골프 레슨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골프에 입문했다는 이유림 씨는 “저렇게 작은 선수들이 저만치 멀리 공을 보내다니, 그저 놀랍다”고 말했다.

우리 선수도, 동반 선수에게도 “굿 샷”

팬들의 열띤 응원전은 안 그래도 뜨거웠던 최종 라운드 경쟁에 불을 붙였다. 오전 10시10분, 공동선두로 우승 사냥에 나선 이가영이 1번홀 티잉 구역에 올라오자 분홍색 피켓과 머리띠로 무장한 팬들은 “가영, 가영, 2승 가영!”이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가영은 243야드 장타로 팬들에게 화답했다.

팬들은 ‘내 선수’만 응원하지 않았다. 같은 조 허다빈이 버디를 잡자 “나이스 버디!”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고, 리슈잉이 실수로 놓친 티샷을 멋진 아이언샷으로 만회하자 “멋지다”고 외쳤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정하게’라는 슬로건을 든 박민지 팬클럽 ‘팀MJ’ 역시 전예성(22)과 이예원(20)의 굿샷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스코어 접수처 앞은 선수들의 사인을 기다리는 팬과 어린이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선수들은 팬들의 응원에 더욱 힘이 난다고 입을 모았다. 박민지(25)는 우승을 확정 지은 뒤 “5시간 넘게 함께 걸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을 보며 ‘버디를 하나라도 더 잡아야겠다’고 힘을 낼 수 있었다”면서 감사를 표시했다.

포천힐스CC=조수영/권용훈/이선아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