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돈줄 조이는데…경제가 식지 않는 세 가지 이유는
입력
수정
팬데믹 저금리로 여윳돈 생긴 기업·가계전 세계 중앙은행이 지난 1년간 긴축 정책을 폈음에도 높은 물가가 유지되는 원인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의 자산 증가 효과, 각국의 재정 정책, 그리고 금리 인상의 시차 효과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자동차·주택 등 소비 늘리며 경기 뒷받침
美는 IRA, EU는 난방비 등 정책 지원금도
"진정한 긴축은 1년도 안돼 … 지켜봐야"
"긴축에 역행하는 팬데믹의 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전 세계 중앙은행이 지난 한 해 동안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경쟁했지만 아직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라며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물가 인상이 지속되는 첫 번째 이유로는 팬데믹 기간 기업과 가계의 자산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 꼽힌다. 이 기간 중앙은행들이 최저금리를 유지하고 정부가 위축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제공하면서 기업과 가계의 여윳돈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가계의 견고한 소비와 기업의 고용 증대로 이어졌다. 톰 바킨 미국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최근 "긴축에 역행하는 팬데믹 기간의 힘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자산 증가 효과가 드러나는 대표 산업이 자동차와 건설업이다. 팬데믹 기간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차량 가격이 증가했음에도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또 지난해 미국 건설시장의 경우 단독주택 건설은 감소했지만 건설업 고용은 증가했다. 미국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현장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결과다.
최근 미국 가계 지출에서 부채상환액 비율이 낮은 점도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올해 1분기 미국 가계부채 상환액은 가처분 개인소득의 9.6%로 1980년부터 팬데믹 이전인 2020년 3월 사이 최저치보다 더 낮았다. 보통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이자 비용이 늘고 소비가 줄어 이 지표가 크게 오른다. 반면 이번 긴축 사이클에서는 늘어난 자산이 방파제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EU 난방비 지원·美 IRA가 경기 뒷받침
높은 물가가 지탱되는 두 번째 요인으로는 정부 지출이 꼽힌다. 유럽의 난방비 지원 정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부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유럽이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게 제기됐으나, EU(유럽연합)가 최대 8500억달러(약 1110조원)를 지출하면서 충격을 완화했다는 것이다.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승인한 1조달러 규모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되고, 반도체지원법이 작동하면서 경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은 국내 성장 둔화를 막기 위해 이달 새로운 경기부양책을 제시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실제 경제에 반영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시차 효과'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영국 중앙은행(BOE)이 코로나19 시기 제로금리를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2021년 12월로 1년6개월 전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해 3월,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7월 무렵 금리 인상 랠리에 돌입했다. 통상 금리 인상 효과가 발휘되는 데는 6~18개월 걸리는 만큼 아직은 금리 인상 효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제한적 통화 정책이 효과를 나타낼 시간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라며 "진정한 긴축 정책이 1년이 지나지 않았고 통화정책 변화가 경제 활동에 유의미한 변화를 주는 데 시간이 걸린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