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적 감춘 푸틴…'쿠데타 진압 후 실각' 고르바초프 전철 밟나

푸틴·프리고진 등 사라져 러시아 불안 높아져
"핵심 선수 누구도 내전 통해 권력 강화 못해"

1991년 공산당 보수파 쿠데타 겪은 고르바초프
정권 지켰지만 '반쿠데타 주도' 옐친에 권력 넘겨
"푸틴, 권력 회복 위해 프리고진 숙청" 전망도

균열 집요하게 파고 드는 블링컨 "러시아는 실패"
바이든-젤렌스키 통화…우크라이나 지지 재확인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반란이 종료된지 하루가 지나도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전쟁 중 리더십 공백이 발생하면서 러시아 내 혼란과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반란은 하루만에 수습됐지만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쿠데타를 진압한 뒤 실각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과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손상된 정치력을 회복하기 위해 프리고진을 숙청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푸틴·프리고진·쇼이구…반란 뒤 모두 사라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바그너그룹의 반란으로 푸틴 정권의 취약성이 드러난지 하루만에 수십년 만에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처한 러시아의 모든 주요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반란 주동자인 프리고진의 행방은 이날 알려지지 않았다. 바그너그룹은 러시아TV네트워크의 질문에 "적절한 통신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답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포착된 바그너그룹 군단은 모스크바-로스토프 고속도로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창의 경제 발전'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대통령 역시 공식석상에서 종적을 감췄다. 로시야TV는 이날 "특별군사작전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지만, 이는 사전 녹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고진이 해임을 요구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역시 반란 기간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책임론에 휩싸인 상태다. 뉴욕타임즈(NYT)는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 쇼이구 등이 사라진 상황에 대해 "혼란과 불확실성이 러시아 전역에 퍼져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인들은 당국이 신중하게 쌓아온 전능함이 아니라 취약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현실과 씨름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WSJ은 "핵심 선수 중 누구도 내전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 쿠데타 진압했지만 실각

러시아 권력의 향방과 관련해 옛 소련 지도자들이 쿠데타를 겪은 후 실각한 사례도 언급된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날 고르바초프와 옐친 재임 시기 발생한 쿠데타를 언급하며 "처음에는 실패한 쿠데타였지만 그 이후로는 지도자의 권력이 살아남지 못했다"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1991년 여름 휴가 중 쿠데타를 겪었다. 공산당 보수파들이 그를 별장에 감금하며 국가 전복을 모의한 것이다. 옐친이 반쿠데타 시위를 주도한 결과 이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권좌에 돌아왔을 때 이미 권력의 무게추는 옐친에게 쏠려있었다. 고르바초프는 그해 12월 사임했다.
옐친도 1993년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그해 9월 러시아 연방 공산당 등 정적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탄핵을 시도한 것이다. 옐친은 다음달 육군 병력을 동원해 시위를 무력 제압했다. 이를 통해 정권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옐친에 대한 지지는 지속해서 하락했다. 임기를 6개월 남겨둔 1999년 말 옐친은 결국 사임하고 푸틴 대통령에게 자리를 넘겼다.

푸틴 대통령이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프리고진에게 보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알리시아 컨스 영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단순히 푸틴과 프리고진 사이의 권력 다툼이 아니다"라며 "국가의 전반적인 안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기 때문에 푸틴이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러시아 총리는 BBC와 인터뷰에서 "프리고진이 일단 벨라루스로 가겠지만, 보복을 피해 다시 아프리카 정글 같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프리고진에게 "열린 창문에서 멀리 떨어져있으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러시아인들이 옥상이나 고층 창문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례들을 언급하면서다. 러시아 국회의원 파벨 안토프는 지난해 12월 인도 한 호텔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러시아 석유 기업 루코일 PSJC 회장인 라발 마가노프는 지난해 모스크바 한 병원 창문에서 추락사했다. 마가노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촉구한 몇 안되는 러시아 기업인 중 하나다.

"전에 없던 균열 러시아에 일어나"

미국과 우크라이나 등 서방은 이번 반란을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을 흔들고 전쟁의 승기를 쥐기 위한 계기로 삼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CNN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의 분열을 집요하게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에) 전에 없던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게 확실하다"라며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 자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내부 문제까지 겹치면서 러시아가 전쟁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통화를 하고 반란 사태 이후 전황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백악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두 정상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고 "두 정상은 러시아에서 최근 발생한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별도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러시아 반란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고 확인했다. 또 이번 사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체제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