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 잘 휘저으면 끝? 무엇이 위대한 지휘자를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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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윤한결의 지휘와 작곡 사이교향악 연주를 감상하며 누구나 한 번씩은 생각해봤을, 이제는 뻔한 클리셰와 같은 질문이 있습니다. "지휘자는 뭘 하는 걸까?" "굳이 지휘자가 필요할까?"
매우 일반적이고 뻔하디 뻔한 질문이지만, 생각해볼수록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각기 다른 답이 바로 각각의 지휘자에게 비로소 어떠한 지휘자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지휘자란 직업의 존재에 의문을 가질 때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팔만 젓고 직접 연주도 안 하는데 왜 필요해?" 네, 정답입니다. 팔만 젓고 연주에 영향력이 없는 지휘자는 가장 필요 없는 지휘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휘를 공부하면 팔 젓는 법, 즉 지휘 테크닉을 가장 많이 배우긴 하지만요.
물론 저는 테크닉을 연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다양한 테크닉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테크닉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19세기 멘델스존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첫 프로 지휘자 한스 폰 뷜로를 필두로 1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직업에는 팔 젓기 그 이상의 것들,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요구됩니다.
일단 지휘자는 청중에게만 잘 보이기 위해 지휘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듣는, 연주회장에서 공간을 채우는 실제 음악 소리는 연주자들이 내는 것이기에, 청중 이전에 무엇보다 먼저 연주자, 오케스트라에 인상을 남기고 영향력을 주어야 합니다.심포니 오케스트라는 50명 남짓 혹은 그 이상의 각기 다른 개인이, 젊은 지휘자의 입장에선 지휘자 자신보다 더욱 연륜 있고 경험이 많은 음악가들이 하나로 모여 같은 음악을 연주합니다. 이들 중 누군가는 그날 따라 컨디션이 좋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기분이 매우 안 좋은 일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몸이 아플 수 있고, 누군가는 지휘자의 외모나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지휘자의 템포나 해석이 이유 불문 마음에 들 수도, 그냥 싫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변수를 제치고 언제 어디서나 연주하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함께 좋은 음악을 만들어가도록, 그리고 만들고 싶도록 이끄는 것, 혹은 이끌 능력을 갖는 것이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테크닉적인 지휘만 자세히 보면 불안하고 부정확한 지휘를 하는 지휘자임에도 울려 나오는 음악이 엄청나고 오케스트라도 황홀한 얼굴로 멋진 연주를 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지휘 테크닉 이상으로 사람을 이끄는, 혹은 그들과 함께 협력하는 능력 그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반증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수많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수많은 변수가 생겨날 수 있는만큼 지휘자가 그들과 협력하거나 그들을 이끄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저의 직간접 경험만을 토대로 떠올려보자면 기본적으로 아우라, 인품, 덕목, 눈치, 센스, 유머, 자신감,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등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첫 번째로 아우라.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휘자가 뒷문으로 몰래 들어와도, 어두운 곳에 숨어있어도 다들 그 존재감을 느끼고, 모르는 사람이어도 보자마자 "아 이친구는 지휘자구나"라고 느낀다는 소문들이 그냥 뜬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아무리 다른 많은 것들을 갖춰도, 이 형용할 수 없는 아우라가 (어떠한 불분명한 이유로) 느껴지지 않으면 음악가들이 지휘자에 대한 신뢰가 없거나 흥미가 없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는 분석의 영역이 아니라 정신적, 영적인 영역인 것 같습니다.
인품도 중요한 요소가 될 때가 많습니다. 한 악단에서 오랫동안 머무는, 즉 단원들 및 매니저, 단장의 지지를 오랫동안 받는 지휘자들은 대개 인품이 좋기로 유명한 경우가 많죠. 물론 좋은 인품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카라얀 후임이었던 아바도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알려졌지만 철두철미하고 확실한 리더였던 카라얀에 비해 유하고 친절하며 온순한 리더로서 베를린 필하모닉엔 어색한 리더였으며 이에 오랫동안 큰 지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반대로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경우엔 음악성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존경할만한 인품과 덕목을 보여주신 얀손스가 오랫동안, 마지막엔 크게 건강이 안 좋아짐에도 여전히 큰 존경과 지지를 받으며 생을 다하실 때까지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셨죠. 얀손스와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은 제가 교향악 음악과 지휘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해준 첫 오케스트라와 첫 지휘자라 학창 시절 리허설과 연주를 많이 보러 다녔는데, 단원분들이 얀손스 지휘자를 마치 인자한 아버지, 할아버지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얀손스의 후임으로 뮌헨에 오시는 사이먼 래틀도 매우 비슷한 경우인 것 같고요.
눈치와 센스도 중요한 점이라고 느낍니다. 지휘자가 리허설에서 혹은 연주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수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준비한 것만 한다면 오케스트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거울 보고 연습한 그대로 지휘만 한다면, 예를 들어 어떠한 이유로 관악기, 타악기 주자 한 분이 곡의 흐름을 놓치든가 특정 악기군의 소리가 너무 과하거나 부족할 때 반응하지 않고 연주는 엉망진창이 되겠죠. 각기 다른 사람들, 다른 어쿠스틱, 각기 다른 상황에 맞춰 어떠한 사고에도 최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센스와 눈치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머와 자신감도 눈치, 센스와 비슷한 영역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모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겠지만, 결국 음악가들은 직업으로서 연주를 하기에, 그리고 같은 사람이기에 연습을 하고 연주를 하며 힘들 때도 많고 지루할 때도 많습니다. 이때 지휘자가 총대를 메고 좋은 타이밍에 자신 있게 분위기를 환기시켜준다면 완벽하게 체계적인 리허설, 연주보다 더욱 좋은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물론 지휘자는 무대 중심에 서기에 티켓파워(인기와 인지도), 언어적 능력(인터뷰 등 광고), 정치적인 능력(음반, 연주 등 계약 관련)도 요구되지만 이 분야는 제가 잘 못하고 모르기에 넘어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음악. 이 힘은 제가 가장 최근 들어서야 느낀 것이라 저도 정확하게 형용할 수는 없습니다만, 소위 말하는 필살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이 독일에서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제 와이프로부터 직접 배운 점인데요, 일단 저는 작곡을 해서 그런지 음악과 소통에 있어 분석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정갈하고 완벽하게 짜인 음악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감정적으로 깊은 혹은 서정적인 음악을 지휘하는 데에는 확신이 없거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반면 3년 반 전 처음 만난 제 와이프는 분석이나 테크닉적인 생각이 크게 없이 오직 마음속에서 뿜어나오는 열정으로만 지휘를 하더라고요. 당시 저는 이해할 수 없던 영역이었는데, 웬걸 직접 들어보니 오케스트라 소리도 흔들림 없이 정말 좋고 무엇보다 연주 자체가 감동적이었습니다.덕분에 저는 제가 지휘자로서 갖추지 못한 중요한 요소(음악 예술에 대한 진심)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제가 생각하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그런 지휘를 옆에서 직접 보며 배우고 스스로 방법을 연구하고 터득하며 깨우칠 수 있었죠. 이 과정을 통해 과거에 어려워했던 음악들, 특히나 후기 낭만 같은 작품들이 점점 제게 친숙해지고 있습니다. 지휘자로서, 아니 음악가로서 배움은 끝이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글을 마치려니, 마치 지휘 테크닉은 덜 중요하다는 느낌으로 글을 풀어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니엘 하딩, 파보 예르비처럼 테크닉, 지휘 실력만으로도 큰 존경을 받는 지휘자들도 물론 많습니다. 결국 지휘자는 특출난 무언가가 있거나 혹은 여러 장점을 두루두루 갖추거나 이 두 가지가 성공의 열쇠가 아닌가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