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아이디어가 원조?…보훈공단, 스타트업 서비스 도용 논란

보훈공단, 작년 11월 공모전 진행
이후 최우수상 업체 앱 자체 개발

공단 측 "원래 개발 계획 있었다"
업체 "아이디어 도용…눈물 날 지경"
지난 3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왼쪽)이 김해보훈요양원을 방문해 스타트업 모드니케어의 비대면 면회 플랫폼 '안부'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모드니케어 제공
정부 산하기관이 스타트업 사업 아이템을 베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달 초 중소벤처기업부가 스타트업 기술 탈취 피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대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대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산하기관까지 관련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26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헬스케어 스타트업 모드니케어는 국가보훈부 산하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 자사 사업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했다. 모드니케어는 요양병원의 어르신과 가족을 잇는 비대면 면회 플랫폼 ‘안부’를 운영하는 곳이다. 보훈공단은 국내 보훈병원·요양원의 운영을 총괄하는 기관이다.모드니케어는 지난해 10월 공단 산하 김해보훈요양원과 실증 사업을 시작하며 보훈공단 측과 연을 맺었다. 이어 11월엔 보훈공단이 주최한 ‘혁신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서비스 이용자가 늘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현장 방문까지 했다. 당시 박 장관은 “앱으로 보호자들이 심적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보훈공단이 전국 보훈요양원에 모드니케어 앱과 비슷한 ‘자체 개발 앱’을 쓰라는 공문을 보내면서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박민찬 모드니케어 대표는 “공문을 받고서야 보훈공단 측이 경진대회 이후 외주업체에 동일 기능의 앱 제작을 발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면회 예약 시스템, 비대면 화상 면회 등 대회 당시 발표했던 내용 대부분이 보훈공단 앱의 주요 기능 또는 향후 개발 계획에 포함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보훈공단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보훈공단 관계자는 “2021년부터 공단엔 소통 관리 앱이 있었고, 기능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개발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모드니케어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통상적 수준으로, 그들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보훈공단은 올해 1월 시스템 개발 용역 제안요청서의 ‘주요 기능과 유사한 서비스를 민간에서 제공하는가’란 항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표기하기도 했다. 보훈공단의 플랫폼은 PC와 모바일(앱) 양쪽에서 모두 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모드니케어는 2020년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박 대표는 “2년간 36만㎞를 운전하며 전국 요양병원을 돌아 간신히 얻어냈던 아이디어와 실증 기회”라며 “경진대회 당시 시장에 없는 혁신적 아이디어라고 인정해 놓고, 갑자기 태도를 바꾸니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정부, 공공기관의 스타트업 아이디어 탈취 논란은 꾸준히 반복돼왔다. 2017년 한국관광공사는 외국인 여행객 대상 포털 사이트를 개발하며 여행 스타트업들과 분쟁을 일으켰고, 경찰청·한국문화정보원 등도 유사한 분쟁을 일으킨 바 있다.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공모전에서 수상할 경우 영업 비밀이 아니게 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나 공공기관이 용역 발주 과정에서 아이디어 탈취를 막을 수 있는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