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차 소설가 김인숙, 첫 추리소설 발표…"또 써보고 싶다"

더 게임

김인숙 지음
문학동네
384쪽|1만7000원
“원래 추리소설을 좋아했어요.”

소설가 김인숙의 말은 뜻밖이었다. 그는 이른바 순수문학이라고 하는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중견 작가다. 1983년 스무 살의 나이로 등단해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차례차례 거머쥐었다.그런 그가 최근 장편 추리소설 <더 게임>(문학동네)을 펴냈다. 요즘 많은 작가가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지만 올해 데뷔 40년을 맞은 중견 작가의 본격적인 첫 추리소설 도전은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김 작가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어려서부터 추리소설, 범죄소설, 공포소설을 즐겨 읽었다”며 “그런 기법을 가져온 소설을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런스 블록, 마이클 코넬리, 제임스 엘로이 등이 좋아하는 추리·범죄소설 작가라고 한다.
<더 게임>은 1994년 7월 24일 밤 9시 54분께 벌어진 한 사건의 진상을 쫓는다. 유난히 덥던 그 여름날 주택가 골목에서 20대 초반의 황이만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려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그날 밤 여자친구 이연희는 종적을 감추고, 22년 후 같은 골목에선 누군가의 백골 사체가 발견된다. 현재 게임 회사 대표로 잘 나가는 황이만은 퇴직 형사 안찬기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22년 동안 실종된 남동생을 찾아다닌 김주희, 과거 부패한 군인 출신 정치인 밑에서 해결사로 일했던 유상대, 황이만을 차로 친 77세의 고령 운전자 강한경, 그리고 황이만에게 ‘dufma0724’라는 아이디로 의문의 이메일을 보낸 인물까지 등장하며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치밀한 심리 묘사와 문장력이 돋보인다. 특히 베테랑 전직 형사인 안찬기와 노련한 전직 해결사인 유상대가 서로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냐를 가늠하며 말을 툭툭 주고받는 부분은 압권이다. 진행 속도가 느리고 심리 묘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점은 독자에 따라 답답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추리소설을 지향하지만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도 결국은 ‘김인숙 표 소설’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김 작가는 “40년 동안 글을 써 온, 너무 오래된 작가이기 때문에 어떻게 써도 결국은 내 스타일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다”며 “안 돌아가려고 되도록 노력은 했다”고 말했다. 심리 묘사는 설득력 있는 결말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추리소설에서 가장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이 반전이지요. 반전까지 오는 과정에 있어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 심리나 이유 그런 것들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 게임>은 문학동네가 새로 선보인 장르문학 시리즈 ‘문학동네 플레이’의 하나로 출간됐다. 문학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이 쓰는 장르소설 시리즈다. 김사과 작가의 신작 <바캉스 소설>, 정한아 작가의 <달의 바다> 개정판이 이번에 이 시리즈로 묶여 나왔다.

정은진 문학동네 편집자는 “김인숙 작가는 2014년 펴낸 장편 <모든 빛깔들의 밤>이나 2018년 펴낸 소설집 <단 하루의 영원한 밤> 등에서 미스터리나 스릴러 같은 장르소설적 기법을 쓴 전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더 게임>은 김 작가가 2019년 펴낸 중편소설 <벚꽃의 우주>(현대문학)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등장인물 일부가 두 작품에 모두 나온다. 1994년 여름밤의 그 사건은 <벚꽃의 우주>에서도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김 작가는 “<벚꽃의 우주>는 <더 게임>의 스핀오프 같은 작품”이라며 “집필은 <더 게임>이 빨랐는데 <벚꽃의 우주>가 먼저 출간된 것”이라고 했다.

소설의 결말은 조금 아쉽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잔뜩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지만, 대단한 건 없다. 이게 그렇게 많은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일인지, 등장인물들은 왜 그렇게 감정 과잉 상태인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앞으로 또 그의 추리소설을 만나볼 수 있을까. 김 작가는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가벼운 작품으로요. 시리즈물처럼 이 작품의 누군가가 또 등장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주시는지에 따라 또 추리소설을 쓸 수 있는 힘을 받을 것 같네요.”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