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레벨3와 '조건부' 레벨3

오토 확대경
미국 자동차공학회(SAE)가 구분한 자율주행은 인지와 판단 주체에 따라 0~5까지 모두 6단계다. 현재 판매되는 자동차는 대부분 2단계 수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운행 책임 주체로 2단계까지는 운전자에게 모든 책임이 부과된다는 점이다.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도 되지만 전방 주시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운전’이라는 행위가 ‘눈, 손, 발’의 기능과 동작에 따라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2단계는 주행 시 일정 구간에만 손발을 떼는 정도다.

3단계로 가면 손(조향)과 발(가감속)의 기능을 자동차에 맡길 수 있게 된다. 운전자는 눈을 통해 위험 여부만 감지하고 필요하면 개입하는 조력자 역할에 그친다. 스스로 차로를 변경하고 주차도 자동으로 해내며 장애물도 알아서 피한다. 운전 주체가 자동차로 바뀌게 되면 전방 주시가 필요 없을 때도 있게 된다. 이른바 첨단 운전지원시스템(ADAS)의 고도화다. 흥미로운 점은 3단계만 도달해도 사고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차로를 변경할 때 접촉 사고를 예방하고 사람이 인지하지 못한 장애물도 피할 수 있으니 인간 운전의 위험은 그만큼 감소한다.그렇다면 3단계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책임 소재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손과 발을 사용하지 않고 전방 주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자동차에 운전을 맡겼을 때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답변은 ‘서로 지지 않는다’다. 제조사는 레벨3 단계라도 최종 사고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반면 운전자는 분명 운전을 자동차에 맡겼을 때 사고가 발생했으니 제조사가 민형사상 책임을 도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책임 여부를 가리는 핵심은 레벨3에 대한 개념 규정이 된다.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은 3단계를 자율주행의 시작으로 인식한다. 자동 운전에 의지해도 될 만큼 기계 지능이 성숙했다는 점을 믿으려 한다. 제조사 또한 지능이 고도화됐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고가의 자율주행 기능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제조사는 사고 책임을 부담하지 않기 위해 ‘조건부’ 또는 ‘부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레벨3 앞에 이런 조건이 추가되면 비록 기계가 운전을 주도한다고 하더라도 개념적으로는 기계 역할이 ‘조건’ 또는 ‘부분’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사고 책임 주체를 운전자로 규정할 수 있다. 완벽하게 법적 책임은 피하되 운전자가 아예 없는 자율주행 상용화에는 한발 다가가는 전략적 선택이다.

반면교사는 테슬라에서 비롯됐다. 그간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능에 ‘오토파일럿’ 또는 ‘FSD(Full Self Driving)’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기계 지능의 차별화에 힘써 왔다. 다만 독일에서 소비자 혼선을 이유로 ‘오토파일럿’ 단어 사용이 논란이 됐고 캘리포니아주에선 ‘FSD’ 등이 완전 자율주행으로 오인될 수 있어 사용이 금지됐다. 아직 자율주행은 인간 운전을 지원하는 ADAS의 연장일 뿐 아직 자동차 홀로 주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아 EV9에 탑재된 자율주행 레벨3 논란이 뜨겁다. 기아는 진화된 운전자 지원 기능을 EV9에 적용하며 ‘레벨3’ 수준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논란을 우려해 ‘레벨3’ 앞에 ‘부분’ 또는 ‘조건부’라는 단어를 명확히 붙였다. 그런데도 일부 소비자는 앞의 글자를 배제한 채 ‘레벨3’을 주목하려 한다. 해외에서 벌어진 논란이 국내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한 셈이다. 자율주행 레벨3과 ‘조건부’ 레벨3에 담긴 법률적 개념은 분명 다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