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의 오스카상' 받은 강미선 "저뿐 아니라 워킹맘은 다 힘들죠"

“제 춤이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부족한 걸 자꾸 채워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21년이 지나고, 큰 상까지 받게 됐네요.”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며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 여성무용수상을 받은 강미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40)는 27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내 출신 무용수 가운데 다섯번째로 이 상을 받았지만 지난 4명의 수상자와 다른 경력이 있다. 출산을 하고도 무대에 오른 '워킹 맘'이라는 사실이다.

강미선은 국내 양대 발레단 중 하나인 유니버설발레단에서 가장 오래(21년) 활동 중인 발레리나다. 선화예중·고와 미국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 등을 거친 그는 2002년 발레단에 연수단원으로 입단, 군무 무용수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수석무용수까지 오른 대기만성형이다. 강미선은 “사실 해외 발레단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최고가 되지 않으면 해외에서도 최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미선은 불과 6분짜리 짧은 단막 발레 ‘미리내길’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다. 이번 심사에서 그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대부분 전막 발레를 후보작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올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유지연 성신여대 겸임교수는 “올해 여성무용수 부문은 파리오페라발레, 볼쇼이 발레단, 마리스키 발레단 등의 세계 정상급 무용수들이 후보로 올라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며 “재투표까지 거쳤을 정도”라고 말했다.

‘미리내길’은 작곡가 지평권이 만든 동명의 국악 크로스오버(혼합 장르) 곡을 바탕으로 유병헌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이 안무를 만든 창작발레다. 한국 무용적 요소에 우리 고유의 정서가 녹아든 작품이다. 강미선은 이 작품에서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연기했다. 그는 “여덞살에 무용을 처음 시작할 때 한국무용과 발레를 함께 배웠다”며 “당시 선생님이 발레 대신 한국무용 전공을 권했을 만큼 한국적 춤사위를 표현하는 데 자신 있다”고 말했다.

수상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워킹맘 발레리나’로 주목을 받은 데 대해선 “조심스럽다”고 했다. 강미선은 같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인 러시아 출신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결혼해 2021년 10월 아들을 출산했다. 그는 “어느 분야든 워킹맘으로 일하는 게 힘들지 않은 직업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특별히 발레리나라서 육아를 하는 데 힘든 점은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발레를 하면서 육아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K 발레’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국내 무용수와 작품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유병헌 예술감독은 “이제 세계 유수의 발레단 중 한국 무용수가 없는 발레단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발레가 최근 1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며 “생활 수준이 올라가며 변화한 신체 조건과 양질의 교육 시스템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은 “세계 발레계가 기존의 고전발레와 달리 한국적인 주제와 의상, 음악 등을 갖춘 우리 고유의 창작 발레에 대해 무척 흥미로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