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이어 삼양식품도 라면 값 인하…다음 차례는 어디?[하수정의 티타임]

정부 압박에 백기 든 라면업계
농심, 신라면 50원·새우깡 100원 내린다
삼양식품은 12개 제품 4.7% 인하
대표제품 불닭볶음면은 빠져

제과제빵 유제품 등 가격 압박 확산할듯
SPC, 빵 가격 인하 저울질

사진=연합뉴스

농심과 삼양식품이 다음 달부터 라면 가격을 인하한다. 라면업체가 제품 가격을 내린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라면에 이어 제과 제빵 유제품 등 전방위로 정부의 가격 압박이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농심 이어 삼양식품도 라면 값 인하

농심은 7월 1일부로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을 각각 50원, 100원 내린다고 27일 발표했다. 농심이 다음 달 적용할 출고가 인하 폭은 신라면 4.5% , 새우깡 6.9%다. 이번 출고가 인하에 따라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은 1000원에서 950원, 새우깡 한 봉지 가격은 1500원에서 1400원으로 각각 낮아질 전망이다. 유통채널별로 가격이 다를 수는 있다.

삼양식품도 가격인하에 동참했다. 삼양식품은 7월 1일부터 순차적으로 삼양라면, 짜짜로니, 맛있는라면, 열무비빔면 등 12개 대표 제품 가격을 평균 4.7% 인하한다고 이날 밝혔다.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삼양라면 5개들이 번들제품 가격은 3840원에서 3680원으로 4%, 짜짜로니는 4개들이 제품 기준 3600원에서 3430원으로 5% 내린다. 열무비빔면은 4입 멀티 제품 기준 3400원에서 2880원으로 15% 인하된다.

다만 삼양식품의 대표 제품인 불닭볶음면은 가격인하 대상에서 빠졌다. 불닭볶음면의 매출 비중은 60% 이상이다.

○ 정부 라면 값 압박 9일만에 백기

라면업체들은 정부의 가격 압박이 본격화한 지 9일만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 값 적정성 논란에 불을 붙인 후 21일엔 한덕수 국무총리가 라면 담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기업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급기야 정부는 26일 제분업체들을 소집해 밀가루 가격 인하 약속을 받아냈고, 농심은 하루 만에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CJ제일제당 등 제분사들은 농심에 공급하는 소맥분 가격을 7월부터 5.0% 내리기로 했다.

농심 관계자는 "제분 가격 인하로 얻게 되는 비용절감액은 연간 약 80억원 수준"이라며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인하로 연간 200억원 이상의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이 대표 제품인 신라면 값을 내리기로 결정함에 따라 삼양식품도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오뚜기도 다음 달 라면 값 인하를 검토할 예정이다.

○MB정부 물가 전쟁 답습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식품 가격 통제를 노골화하면서 식품업계에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조사를 받을 수 있다며 정부가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라면 다음 대상은 제과제빵과 유제품이 되지 않겠냐는 추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 같은 정부의 물가 전쟁 방식은 과거 이명박 정부 때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에도 밀 가격이 하락했다는 이유로 정부의 제품 가격 인하 압박이 전방위로 펼쳐졌고 공정위와 국세청이 동원됐다.

농심은 당시 신라면과 안성탕면, 육개장 사발면 등 주력제품의 가격을 2.7~7.1% 내렸다. 2010년에는 라면업체들 뿐 아니라 롯데제과, 크라운해태제과, SPC 파리바게뜨, CJ푸드빌 뚜레쥬르 등 제과 제빵업계도 가격인하에 줄줄이 동참했었다.

농심의 가격 인하 결정으로 식품업계 전반에 가격 압박이 더 커지게 됐다. 특히 농심이 라면 뿐 아니라 스낵인 새우깡 가격을 인하하면서 스낵과 과자, 제과제빵 업계는 고민이 깊어진 상황이다.

국내 제과제빵 1위 업체인 SPC는 이날 오후 긴급 임원 회의를 열고 가격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SPC는 조만간 빵 가격 인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밀가루 가격은 내렸지만 설탕 등 다른 원재료 가격은 여전히 높은데다 인건비 물류비 에너지비 등을 감안하면 가격을 내리긴 부담스러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물가 변수 많아

특히 하반기 기상 악화 등 물가 변수가 많아 식품 가격이 안정화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올 하반기에는 '슈퍼 엘니뇨'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엘니뇨는 태평양 적도 지역 해수면이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아지는 현상이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에 열과 습기를 대기로 다량 방출하고 세계에 폭염, 가뭄, 폭우 등 기상이변을 몰고 온다. 이로 인해 소맥, 원당 등 주요 식품 원재료의 수급 차질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원유 가격 협상도 변수다. 낙농진흥회는 이달 9일부터 이사 1명, 생산자 3명, 우유업계 3명 등 7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열어 원유 기본 가격 조정을 협상하고 있다. 올해는ℓ당 69∼104원 범위에서 가격 인상이 예고돼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해외 판매가 호조를 보이는 등 소위 잘나간다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두더지 게임'식으로 가격을 잡으려 한다"며 "상장사들은 가격을 무조건 내렸다가는 배임 소지가 있어 더욱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