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현지인 한국어 선생님이 반가운 이유

이해영 세종학당재단 이사장
‘잠보. 하쿠나 마타타.’ 차가운 물을 뜻하는 마사이 말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나이로비가 케냐 민요 ‘잠보’의 선율과 함께 TV 화면에 등장한다. 붉은 갈색빛 토지, 눈부시게 선명한 새파란 하늘, 그리고 초록빛 나무들이 품어내는 조화는 그들이 즐겨 먹는다는 ‘수쿠마’나 ‘무키모’처럼 알록달록하고 강렬하다. 고층 빌딩과 멋진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활보하는 기린을 사진에 담아 보고 도심에서 사파리도 즐기는 것은, 활기찬 동아프리카 최대 도시 나이로비가 주는 매력이자 특권일 것이다.

그러나 나이로비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었다. 그곳에 가면 밝고 낙천적인, 그래서 활력이 넘치는 한국어 선생님이 있다. 바로 나이로비 세종학당이 키워낸 현지인 교원 은디안구이 필리스 왕게치 선생님이다.필리스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워크숍 때였다. 언뜻 보기에도 전통의상을 모티프로 했음 직한 화려한 옷을 입은 그의 천연덕스럽고 능수능란한 한국어 실력은, 유난히 밝고 환한 미소만큼이나 돋보였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는 대회 기간 내내 강의와 각종 체험학습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이제는 언니와 남동생들까지 한국 유학파가 됐다는 그는 사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여러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꿈에 그리던 선생님, 그것도 무려 한국어 선생님으로 활동하게 됐다. 그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드디어 아프리카에도 외국인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학당재단에서 한국어 교원을 양성하고 현장에 투입한 지 10여 년이 지난 올해, 전 세계 세종학당 교원 1145명 중 한국인 파견 교원은 250명 정도지만, 현지인 교원은 500명 가까이 된다. 세종학당의 외국인 한국어 교육 전문가 수는 기대 이상으로 많아졌다. 아프리카 역시 현지 교원 수가 적지 않다. 또 외국인 현지 교원 중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증하는 정식 한국어교원 자격증 취득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베트남이나 태국처럼 학부와 대학원에서 학위과정으로 한국어교원을 양성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현지인 전문가의 양성은 해외 한국어 현장의 지속 가능 발전을 이끌 동력이 될 것이다. 비로소 상호 문화주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한국어 교육이, 다양한 문화 주체의 참여와 활동의 보장을 통해서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기반을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하겠다.

케냐의 은디안구이 필리스 왕게치 선생님을 보면서 지속 가능한 한국어 교육의 가능성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