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프티, 중소의 기적이었는데…논란의 본질은?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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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세력 개입' 논란→전속계약 분쟁으로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선전하며 '중소돌의 기적'이라 불렸던 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활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데뷔 7개월 만에 소속사와 전속계약 갈등이 불거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피프티 피프티(새나, 아란, 키나, 시오)는 지난 2월 발매한 곡 '큐피드(Cupid)'로 국내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룹이다.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큐피드'는 특히 미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 14주 연속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대형 기획사가 아닌, 중소 기획사에서 거둔 이례적 성과였다. 소속사 어트랙트는 조관우, 바비킴, 양수경, 윤미래, 박강성, 하성운 등의 보컬리스트들과 호흡했던 전홍준 대표가 설립한 회사다.
전 대표는 지난 4월 한경닷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글로벌 마케팅 비용이 없어서 현지 레이블사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음악을 한 번만 들어봐 달라고 말하고 다녔다"며 "피프티 피프티 1집 이후 차도 팔고, 밥도 싼 것만 먹으면서 제작비를 충당했다. 녹음도 지인의 녹음실에 가서 했다"고 피프티 피프티의 데뷔가 '회사의 명운을 건' 프로젝트였다고 강조했던 바다.
'큐피드'가 대박난 이후 어트랙트는 투자 유치를 위해 전력투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뷔한 지 7개월 차밖에 되지 않은 신인이었지만, 피프티 피프티의 행보는 대형 기획사에서도 이뤄내기 힘든 성과임이 분명했다. 미국 현지에서의 프로모션 및 컴백 등 활발한 활동이 기대되는 시점이었다.하지만 피프티 피프티가 추가적인 활동에 나서지 않아 의문을 자아냈다. 방송가에서는 "멤버 중 한 명의 건강이 좋지 않아 예정된 컴백 일정도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건강 이상설은 사실이었다. 어트랙트는 멤버 아란이 지난달 수술을 받고 회복기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그룹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멤버들을 강탈하려는 외부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해당 세력이 피프티 피프티의 해외 유통사인 워너뮤직코리아를 통해 멤버들에 접근하고 있다며 워너뮤직코리아를 상대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워너뮤직코리아 측은 "어트랙트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이목은 '외부 세력'에 쏠렸다. 업계에서는 멤버들을 빼내려는 제3자로 피프티 피프티를 프로듀싱했던 안성일 더기버스 대표에 주목했다. 안 대표는 피프티 피프티 기획 단계부터 어트랙트와 함께해 온 인물이다. 어트랙트에서는 기획·제작 총괄 대표 직함을 달았다.
안 대표는 젝스키스, 핑클, 소찬휘, Y2K, 애즈원, 은지원, 제이워크, 럼블피쉬 등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아티스트들과 호흡했고, 워너브라더스코리아에서 제작이사를 맡기도 했다. 프로듀싱에서 손을 뗀 이후로는 콘텐츠 개발 그룹 더기버스를 설립해 IP 사업을 해왔다. 안 대표의 사업 능력은 피프티 피프티의 해외 진출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대표는 지난 4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피프티 피프티를 맡기 전에도 계속 콘텐츠, IP를 분석하고 개발하는 일을 해왔다. 해외 파트너들이 많다"면서 "음악 비즈니스 쪽으로 선회해 IP를 관리하거나 만드는 업무를 했다. 엔터 산업의 안에 있을 때 보는 것과 비즈니스 땅에서 보는 관점이 다르더라. K팝과 해외 음악 시장의 트렌드 변화 등을 계속 보게 됐다. 그런 게 이번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밝혔다.피프티 피프티의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전 대표의 제안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전홍준 대표는 해외 시장 진출에 대한 니즈가 강했다. 처음엔 조언해 드리는 정도로 만났었는데 총괄 지휘를 해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전 대표 역시 "우린 스타트업 기업"이라면서 안 대표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하지만 두 달 뒤 상황은 완전 바뀌었다. 지난 27일 어트랙트는 안 대표를 업무방해·전자기록 등 손괴·사기 및 업무상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어트랙트는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프로젝트 관리 및 업무를 수행해온 더기버스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과정에서 인수인계 지체와 회사 메일계정 삭제 등 그동안의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더기버스 측은 해외 작곡가로부터 음원 '큐피드(CUPID)'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어트랙트에게 저작권 구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고 본인 및 본인의 회사가 저작권을 몰래 사는 행위를 했다"고 덧붙였다.
어트랙트가 '외부 세력'으로 더기버스와 안성일 대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피해 사실을 주장한 것. 윗선에서 내홍을 겪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며 이는 '연예계 탬퍼링(사전 접촉)' 문제로 번지는 듯했다.
하지만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이 입을 열며 사건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피프티 피프티는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사실을 뒤늦게 알렸다.
이들은 어트랙트가 안 대표를 고소하기 전인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멤버들은 △투명하지 않은 정산 △활동이 어려운 건강 상태를 밝혔음에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자 했던 모습 등을 지적했다. 또 멤버의 수술 사유를 당사자 협의도 없이 임의로 공개했다는 점을 꼬집기도 했다.
"외부 개입이 없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피프티 피프티는 외부의 꾀임에 의한 결정이 아닌, 부모님들과 충분히 상의한 후에 문제제기한 것이며 본질은 "어트랙트의 계약 위반과 신뢰관계 파괴"라고 주장했다.내홍·탬퍼링에 초점이 맞춰졌던 갈등은 이제 소속사와 아티스트 간 전속계약 문제로 옮겨졌다. 양측이 주장하는 '논란의 본질'이 서로 달라 상황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피프티 피프티가 중소 기획사의 희망으로 불리며 K팝의 새로운 성공 사례로 여겨졌고, 성장세를 탄 더없이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안타깝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