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펀드 수익률이 -261%?…'황당' 퇴직연금 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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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계산방식에 투자자 혼란투자자 A씨는 최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공동 운영하는 통합연금포털 사이트에서 연금상품 수익률 공시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몇 년 전부터 개인형 퇴직연금을 통해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 ‘한국투자연금베트남’ 펀드의 지난해 수익률이 -261%로 공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원금을 모두 날린 것으로 이해하고 불안해진 A씨가 즉시 펀드판매사에 문의해 확인하니 실제 이 펀드의 작년 수익률은 -22%였다. A씨는 “정부가 도대체 어떻게 수익률을 산출하고 관리하길래 실제보다 열 배 많은 손실률을 공시해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것이냐”고 말했다.
정부가 2020년 국민이 제대로 된 퇴직연금펀드 수익률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통합연금포털’의 수익률 공시를 놓고 부실 논란이 일고 있다. 대부분 투자자가 거둔 실제 수익률과 전혀 다른 수치를 공시해 혼란만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크다.한국투자연금베트남펀드처럼 원금 대비 손실률이 100%를 넘는 등 ‘현실에서 나올 수 없는 수익률’을 공시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28일 통합연금포털의 ‘연금상품 비교공시’를 검색하니 ‘하나UBS인BEST연금유럽포커스’의 작년 한 해 수익률이 -250.64%로 나타났다. 원금을 모두 날리고도 150% 추가 손실이 났다는 의미인데, 파생상품이 아닌 일반 펀드에서는 불가능한 수익률이다. ‘미래에셋g2이노베이터’는 -134.72%, ‘미래에셋연금러시아업종대표’는 -104.49%로 작년 수익률이 공시돼 있다.
-38%가 -115%로…이상한 연금 수익률 계산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공동 운영하는 통합연금포털의 퇴직연금펀드 수익률이 투자자들이 실제 거둔 수익률과 대부분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정부가 2020년 ‘순납입원금 기준 수익률’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계산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달간 펀드에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을 가감한 월말 ‘순납입원금’ 대비 해당월 발생한 수익(또는 손실)으로 수익률을 계산하는 방식이다.○생소한 ‘순납입원금 기준 수익률’
이런 방식은 일반적으로 주식·채권형펀드 수익률을 계산할 때 사용되는 ‘기준가 수익률’ 방식과 대별된다. 이는 펀드가 투자한 원금의 자산가치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따지는 방식이다. 펀드가 투자한 자산 가치가 1월 초 1만원이었다가 1월 말 1만2000원이 된다면 ‘한 달간 20% 수익이 났다’고 표기하는 식이다.순납입원금 대비 수익률을 쓰면 들어오고 나간 원금이 변수가 된다. 1월 초 1만원이던 원금이 월말 직전 9000원 빠져나간다면 월말 순납입원금은 1000원이 된다. 똑같이 한 달간 1만원으로 2000원의 수익을 낸 경우라도, 순납입원금 수익률은 200%(2000원/1000원)가 되는 식이다. 신규 가입이나 환매가 급증할수록 기준가 수익률과 차이는 커지게 된다.
통합연금포털의 퇴직연금펀드 수익률은 이런 이유 때문에 거의 모든 상품 수익률이 기준가 방식 대비 과도하게 나타난다. ‘우리연금저축포커스’는 기준가 방식으로 작년 한 해 동안 -33.9%의 수익률을 냈지만 통합연금포털에선 -93.12%로 공시됐다. -38.0% 수익률을 기록한 ‘KB스타베트남VN30인덱스(C-P)’도 통합연금포털에선 -115.83%라고 표기돼 있다.한 자산운용사 마케팅 임원은 “지난해 증시 불황으로 펀드 수익이 악화한 가운데 원금이 빠져나가면서 통합연금포털 손실률이 기준가 방식보다 더욱 커지는 사례가 속출했다”고 했다.
○“당국의 전문성 부족이 문제”
정부가 2020년부터 연금상품 수익률 공시를 한 것은 퇴직연금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을 투명하게 공개해 투자자들이 우수 성과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지원하는 동시에 펀드·자산운용사 간 경쟁도 유발하겠다는 취지였다.하지만 투자자에게 생소한 순납입원금 대비 수익률 방식을 채택한 것은 이런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대형 자산운용사의 퇴직연금 부문 관계자는 “현재의 공시 방식으로는 원금 입출입이 수익률 계산의 변수가 되기 때문에 펀드의 실제 투자 성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 시행 3년 동안 수익률 제공에도, 경쟁 활성화에도 기여하지 못한 이유”라고 했다.일각에선 수익률을 집계해 공개하는 정부 부처의 전문성 부족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신중철 에프앤가이드 고문은 “펀드 계산 방식은 여러 개가 있는데 방식마다 쓰임새와 장단점 등이 모두 다르다”며 “여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제도를 추진하니 이런 오류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수익률 계산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직연금 관련 공시 방식 및 정보 공개 개선을 논의할 사회적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퇴직연금 운용 모범 사례로 꼽히는 미국은 민간·학계·정부가 공동 논의를 거쳐 퇴직연금 상품 및 가입자별 현황 등을 매년 수집하고 관련 정보를 모은 분석보고서까지 내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문제점을 파악해보겠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