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다빈치' 헤더윅 "난, 천년 남을 건물을 빚는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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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국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민들레 홀씨처럼 '훅~' 불면 날아갈듯 움직이는 높이 10m의 하얀 큐브(씨앗의 성전), 뉴욕 한복판에 툭 떨어진 구멍 뚫린 벌집 건물(베슬)과 허드슨강 위의 인공 섬(리틀 아일랜드), 1000개의 건물을 1000그루의 나무 정글처럼 보이게 한 복합건물(상하이 1000트리스), 9만장의 태양광 패널이 용의 비늘처럼 물결치는 실리콘밸리 구글 신사옥(베이뷰). 그리고 50여 년만에 새 디자인으로 갈아입은 런던의 빨간 버스(루트마스터)….
문화역서울284에서 '토마스 헤더윅: 감성을 빚다'
'씨앗의 성전' '베슬' 등 포함해 30점의 건축 모형과 영상
자동차에서 공공 건물, 가구까지 '경계 없는 디자이너'
"생명력 잃은 전 세계 건물을 '인간답게' 만드는 게 목표"
한국은 세계적인 창조도시..."문화의 '르네상스'가 왔다"
토마스 헤더윅(53)이 지난 30년 간 해온 작품들이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의 업적은 일일이 다 나열하기도 어렵다. 건축가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건 보통 50대 이후라지만 헤더윅과 그의 스튜디오는 약 30년 간 세계 주요 도시에 '랜드마크'를 심고 다닌다. 이제 그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영국의 국민 디자이너이자 '콘란샵'을 만든 거장 테렌스 콘란은 그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극찬했다. 헤더윅의 작업엔 경계가 없다. 장르도 없다. 1980년대부터 2000년 초까지 프랭크 게리,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 수 많은 해체주의 건축가들이 활약했지만 헤더윅에겐 '00 주의'라는 어떤 수식어도 붙이기 어렵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성화대가 원형 경기장 바닥으로 내려와 벌어졌다 오므라들길 반복(2012년)하는가 하면,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용의 꼬리처럼 말렸다 펴지길 반복하는 다리(2002) ,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절대 쓰러지지 않는 스펀 체어(2010년)까지 그의 손이 닿은 곳엔 항상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28일 오전 옛 서울역사 문화역서울284를 찾은 그를 만났다. '헤더윅 스튜디오전: 감성을 빚다'라는 이름으로 29일부터 시작하는 이번 전시에 앞서 그의 대표작 30점을 미리 봤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건축물을 끊임없이 지은 헤더윅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건축가'가 아닌 '디자이너'라고 규정했다.
▲뉴욕 허드슨강의 '리틀 아일랜드'
"예술, 건축, 디자인 등 이런 구분은 다양성과 상상력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한 장르에 스스로를 가두고 나면 '자기복제'를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스스로를 전문가나 특정 직업인으로 가두지 않고, 세상에서 벌이지는 수많은 일과 장면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합니다. 저에겐 관점을 전환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건축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고요."
▲런던 킹스크로스의 '콜 드롭스 야드'
그는 공공 예술과 공공 시설 영역에서도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70주년을 기념한 공공미술 작품 '트리 오브 트리스'는 버킹엄 궁전 앞에 설치돼 대대적 점등 행사로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엔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런던의 2층 버스는 장애인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디자인 됐다. 2010년 상하이 비엔날레 영국관을 디자인을 맡았을 땐 '씨앗은행'을 중점적으로 만들고 있는 국가정책을 반영해 6만여 개의 아크릴 봉 안에 각각 씨앗을 심어 건물 전체가 춤추게 했다. 헤더윅은 자신의 작업을 '인간적인(Humanised)'이라고 요약한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건축은 너무 '비인간적'인 모습이 되었어요. 도시마다 비슷비슷한 건물을 효율성이라는 명분 하에 지어댔고, 이제 생명력을 다 한 것들이 넘쳐납니다. 영국의 상업용 건물의 수명은 40년, 한국은 평균 30년이라고 하죠. 하지만 건축은 사람의 생각을 디자인합니다. 우리의 감성이 담겨 1000년 넘게 곁에 머물 건물을 짓는 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것인 동시에 사람들의 감수성과 창의성을 북돋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하이 도시재생 지역에 10년째 짓고 있는 '1000트리스'
200여 명의 팀원과 함께 하는 헤더윅 스튜디오는 일반 건축 스튜디오와 조금 다르게 작업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그 첫번째다.
"설계를 시작할 때 항상 '문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죠. 올림픽 성화대를 만들 땐 '원형 경기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쏠리는 곳은 중앙의 바닥인데 왜 하늘 높은 곳에 들어올려야 하나' 생각했죠. 학교는 선생과 학생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는 곳인데 왜 딱딱한 구획으로 나뉘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따르는 곳이어야 할까. 왜 강물 위 다리는 가만히 고정된 채 있어야 할까, 사람이 지날 때만 펼쳐지면 안되는 걸까 하고요."
▲2010년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영국관. 6만 개의 씨앗이 있어 '씨앗의 성전'으로 불렸다.
그는 어린 시절 발명가를 꿈꿨다. 잡동사니 가득한 어머니의 구슬 가게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가 공예 장인들과 함께 자란 영향이다. 하지만 대학엔 '발명'이라는 전공이 없다는 걸 깨닫고 맨체스터 폴리테크닉에서 3D 디자인을 전공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원에선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다. 1994년 디자인, 제작, 건축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을 모아 '헤더윅 스튜디오'를 차렸고, 소규모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하다 2001년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집단 토론과 질문과 분석, 반복을 통해 '예술가들의 예술'이 아닌 '대중들이 열광할 만한 예술'을 고민했다.
"모든 사람은 특별해지고 싶어합니다. 80억 명의 인구 중에 추하고 못생기길 원하는 사람은 없어요. 누구나 아름다운 럭셔리를 꿈꾸죠. 건물도 그러해야 합니다. 각각은 특별해야 하고, 그 안에 맥락과 이야기와 감성이 담겨야 하고, 그래서 하나 하나가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는 건물이 되어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러닝 허브'. 6개의 건물이 원형으로 모두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과 관련한 프로젝트들도 소개된다. 강원도 양양에서 진행 중인 미술관 '더 코어'와 헤더윅이 공모에 참여한 한강 노들섬 재개발 프로젝트 '사운드 스케이프' 등이다. 노들섬 주변에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기관들이 있어 이를 연결하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헤더윅 스튜디오가 서울시에 제안한 노들섬 프로젝트 '사운드스케이프'
10년 전부터 한국을 오간 그는 "세계가 한국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통해 알려진 서울이 이제 '누구나 가장 먼저 가고 싶은 장소'가 됐다"며 "공예와 건축 등 수준 높은 한국의 문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팽이처럼 생긴 의자 '스펀 체어'
"헤더윅 스튜디오가 큰 프로젝트를 많이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늘 자본과 행정의 제약을 극복해 왔지요. 어떤 벽에 부딪칠 때마다 우린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번 전시가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조금 더 스파크를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김보라 기자 / 사진=이솔 기자· 헤더윅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