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천진난만한 그림으로…세상을 비웃다[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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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스프로젝트 애드 미놀리티 개인전버섯에서부터 벌과 생쥐, 도깨비까지….
동화책에서나 볼 만한 그림들이 미술관을 가득 채웠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작품과 전시장 벽면 곳곳의 동화같은 그림들은 숲속에 펼쳐진 아름다운 세상을 묘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있어보면 다르다. 섬짓함마저 느껴진다. 작품들 안에 세상을 향한 날선 비판의 시선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페레스프로젝트에서 이뤄지고 있는 아르헨티나 작가 애드 미놀리티의 전시 ‘숲의 기하학’이 국내 관람객을 찾아왔다. 애드 미놀리티가 국내에서 처음 여는 개인전이다. 모두 15점을 내놨는데 첫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올해의 신작만 골랐다. 독일 에를랑겐 미술관에서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미놀리티의 개인전에 내놓을 작품들이 첫 선을 보였다.
미놀리티는 남미의 남성우월주의적 예술에 이의를 제기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젠더와 동물, 아동인권 등의 주제를 아우르며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작품에서 남과 여, 어른과 아이 등으로 사람들을 구분짓지 않는다. 이분법을 배제한 유연함이 작품의 특징이다. 작가는 성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특유의 추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중 하나인 ‘페어리 위드 머스태쉬’에 그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난다. 작품에 쓰인 무지개색은 성소수자, 특히 트렌스젠더를 의미한다. ‘수염을 기른 요정’이라는 작품명에서도 드러나듯 요정 같은 이미지를 강요 받는 여성성을 돌아보게 한다. 젠더리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작품이다.어른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늘어놓는다. 1층 전시장 문을 열면 바로 정면에 보이는 ‘매직 더스트’를 통해서다. 작품에서 미놀리티는 애벌레, 버섯, 노란색, 흰색과 같은 색채를 사용해 루이스 캐럴의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을 추상화로 재구성했다. 단순한 재구성이 아니다. 작품을 계속 들여다보면 해맑고 순수한 느낌보다 어딘가 기괴하고 스산한 느낌이 든다.
미놀리티는 이처럼 어린이 문학, 장난감, 만화에서 사용되는 상징성을 비판적으로 비꼰다. ‘어른이 그리고 쓰는 어린이 문학이 얼마나 어린이의 시각을 반영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미놀리티가 작품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한국을 찾은 그는 비판적인 작품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어릴 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술활동에 제약이 많았고 그 차별을 어른이 돼서도 느꼈다”며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젠더, 아동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놀리티의 작품은 세계 미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2019년 제 58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되며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지난 2021년에는 광주비엔날레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며 처음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전시는 1층과 2층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다만 작품에 대해 간단한 설명조차 없는 것은 아쉽다. 전시는 8월 20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