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헌재소장 공관엔 공무원이 몇 명이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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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하라는 NGO 청구에‘인사관리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장 공관 직원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을 때 받은 거부 이유다. 행정정보 공개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정보공개법(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1조에 법 취지와 지향점이 잘 명시돼 있다. ‘이 법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공개 청구 및 공공기관의 공개 의무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國政)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헌법수호기관'도 미적미적
투명행정·공개행정,선진정부 조건
'민주유공자' 비밀주의는 더 문제
보훈부 행적 확인 요청까지 거부
명단·공적 감추는 특별한 이유있나
허원순 수석논설위원
하지만 법과 현실은 자주 거리가 있다. 언필칭 ‘헌법수호’를 외쳐온 헌재도 나랏돈 한 푼 받은 적 없는 NGO(비정부기구)의 합법적 청구에 못 하겠다고 답했다. 사택이라면 될 것을 공관이란 말로 폼 잡고 권위화했으면서도 이름값에 부응하지 않았다. 헌재소장 공관 직원 수, 직급, 인건비 지출 금액을 밝히는 게 왜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주나. 헌재의 공개거부 석 달 만에 납세자연맹은 다른 절차인 행정심판청구까지 제기했다. 다시 석 달 넘게 끌어오다 뒤늦게 한껏 어려운 말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청구 인용 결정’을 내렸다. 청구에 응하겠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러고도 또 보름째, 헌재는 여전히 입을 닫고 있다. 아마 어느 수준에서 ‘공개’라는 형식에 맞출지 장고 중일 것이다. 마지못해 헌재 간판값은 해야겠고, 그렇다고 당랑거철의 NGO 요청대로 다 내놓긴 싫고, 고민될 것이다. 그새 슬며시 직원 수라도 어떻게 해놓고 싶을지 모른다. 언제 어느 정도를 공개할지, 이런저런 구실로 계속 깔아뭉갤지 관심거리다.
헌재는 국가정보원 국세청 검찰·경찰처럼 특별한 정보나 기밀을 다루는 곳이 아니다. 합리적 기관운영, 투명한 예산집행, 공개행정은 스스로의 명예와 합법적 권위를 높이는 데 도움 된다. 그런데 감추려 든다. 뭔가 탈법·편법 운용이 있거나 ‘관존민비 DNA’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니면 스스로 봐도 과하고 민망해서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문제다. 앞서 청와대 특활비 논란에서도 납세자연맹은 법에 따라 여러 번 공개를 청구했지만 모르쇠 비밀행정의 벽을 못 넘었다. ‘청와대 김정숙 의상비’에 대한 납세자의 알 권리는 결국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선진사회로 가려면 국가 경영의 소프트웨어인 행정이 혁신돼야 한다. 투명행정, 공개행정이 양대 요체다. 미국의 정보자유법(FOIA)을 비롯해 선진국들은 제도로 구축해놓은 지 오래다. 근대적 정보공개법률을 처음 제정한 나라는 스웨덴이다. 1766년에 자유주의 사상가의 선구적 예지가 법에 반영됐다. 이 나라의 투명사회·공개행정은 정평이 나 있다. 소득·세금·부동산·자동차 정보는 기본이고, 반려견 보유도 공개 대상이다. 특히 공무원은 업무로 주고받은 통화와 이메일 기록, 업무 결정의 이유, 민원인 질의·답변, 입찰결정 관련 내용까지다. 공직은 어항 속의 물고기 같은 존재다. 그런 조건에서 공공 근무로 보람과 긍지를 갖고 싶으면 공무원을 하는 것이고, 아니면 민간에서 일하면 된다. 어디서나 선택은 자유다.투명과 공개 원칙의 행정이 뒷받침되면서 스웨덴은 특유의 복지 시스템도 도모할 수 있었다. 한국에선 이 나라의 복지 모델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지만 정작 주목하고 배울 부분은 청렴 행정과 전반적으로 투명한 사회라는 점이다. 정부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조사에서 가장 앞섰고, 국회의원들은 개인 보좌관도 없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나라다. 스웨덴이든 어디든 투명·공개 행정은 더 배우고 더 받아들여야 한다.
헌재만이 아니다. 정보청구에 대한 한국 공공기관들 반응은 오십보백보다. 이제는 투명성에서도 정부가 민간을 배워야 한다. 글로벌 대기업은 겹겹의 시스템으로 투명성이 제도로 강화돼 왔다. 투자 유치부터 공공 입찰까지, 국제 비즈니스를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헌재 경우보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민주유공자법’ 대상자에 대한 일체의 비밀이다. 국가유공자라면서 명단도 공적도 공개가 안 된다. 사생활 비밀보호 때문이라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이들의 공적을 점검하려는 국가보훈처조차 기록에 접근하지 못한다니 크게 잘못됐다. 공관 직원 수에 쉬쉬하는 헌재 행태는 저리 가라다. 정보공개법은 왜 만들었나. 모양새만 선진국 따라 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