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랜드마크 심는 영국의 다빈치…천년 지나도 살아 숨 쉴 건축을 빚다

'헤더윅 스튜디오전'서 만난 헤더윅

다리는 왜 고정돼야 할까
학교는 왜 딱딱한 느낌일까…
설계의 첫걸음은 항상 '질문'

벽 만나면 더 새롭게 생각해야
전시가 당신의 상상력 깨우길
헤더윅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미국 뉴욕 허드슨강의 ‘리틀 아일랜드’.
민들레 홀씨처럼 ‘훅~’ 불면 날아갈 듯 움직이는 높이 10m의 하얀 큐브(씨앗의 성전), 뉴욕 한복판에 툭 떨어진 구멍 뚫린 벌집 건물(베슬)과 허드슨강 위의 인공 섬(리틀 아일랜드), 1000개의 건물을 1000그루의 나무 정글처럼 보이게 한 복합건물(상하이 1000트리스), 태양광 패널 9만 장이 용 비늘처럼 물결치는 실리콘밸리 구글 신사옥(베이뷰). 그리고 50여 년 만에 새 디자인으로 갈아입은 런던의 빨간 버스(루트마스터).

토머스 헤더윅(53·사진)이 지난 30년간 해온 작품들이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의 업적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건축가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건 보통 50대 이후라지만 헤더윅과 그의 스튜디오는 약 30년간 세계 주요 도시에 ‘랜드마크’를 심고 다녔다.
헤더윅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싱가포르 난양공대 ‘러닝 허브’.
헤더윅의 작업엔 경계가 없다. 장르도 없다. ‘XX주의’라는 어떤 수식어도 붙이기 어렵다. ‘헤더윅 스튜디오전: 감성을 빚다’라는 제목으로 옛 서울역사 문화역서울284에서 전시회를 여는 그를 지난 28일 만났다. 전시장엔 자동차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 성화대, 그의 대표작 모형 등 30점으로 빼곡하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건축물을 끊임없이 지은 헤더윅이지만 그는 자신을 ‘건축가’가 아니라 ‘디자이너’라고 규정했다.

“예술, 건축, 디자인 등 이런 구분은 다양성과 상상력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한 장르에 자신을 가두고 나면 ‘자기복제’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저를 전문가나 특정 직업인으로 가두지 않고, 세상에서 벌이지는 수많은 일과 장면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합니다. 저에겐 관점을 전환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건축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고요.”
헤더윅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영국 런던의 상징으로 50년 만에 디자인이 바뀐 ‘루트마스터’.
그는 공공예술과 공공시설 영역에서도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즉위 70주년을 기념한 공공미술 작품 ‘트리 오브 트리스’는 버킹엄 궁전 앞에 설치돼 대대적 점등 행사로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엔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런던의 2층 버스는 장애인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디자인됐다. 2010년 중국 상하이 비엔날레 영국관 디자인을 맡았을 땐 ‘씨앗은행’을 중점적으로 만들고 있는 국가 정책을 반영해 6만여 개 아크릴 봉 안에 각각 씨앗을 심어 건물 전체가 춤추게 했다. 헤더윅은 자신의 작업을 ‘인간적인’이라고 요약한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건축은 너무 비인간적인 모습이 됐어요. 도시마다 비슷비슷한 건물을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지어댔고, 이제 생명력을 다한 것들이 넘쳐납니다. 영국의 상업용 건물 수명은 40년, 한국은 평균 30년이라고 하죠. 건축은 사람의 생각을 디자인합니다. 우리의 감성이 담겨 1000년 넘게 곁에 머물 건물을 짓는 건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것인 동시에 사람들의 감수성과 창의성을 북돋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00여 명의 팀원과 함께하는 헤더윅 스튜디오는 일반 건축 스튜디오와 조금 다르게 작업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그 첫 번째다.“설계를 시작할 때 항상 ‘문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죠. 올림픽 성화대를 만들 땐 ‘원형 경기장에서 사람의 시선이 가장 많이 쏠리는 곳은 중앙 바닥인데 왜 하늘 높은 곳에 들어 올려야 하나’ 생각했죠. 학교는 선생과 학생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는 곳인데 왜 딱딱한 구획으로 나뉘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따르게 돼 있을까. 왜 강물 위 다리는 가만히 고정된 채 있어야 할까, 사람이 지날 때만 펼쳐지면 안 되는 걸까 하고요.”
그는 어린 시절 발명가를 꿈꿨다. 잡동사니 가득한 어머니의 구슬 가게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가 공예 장인들과 함께 자란 영향이다. 하지만 대학엔 ‘발명’이라는 전공이 없다는 걸 깨닫고 맨체스터 폴리테크닉에서 3차원(3D) 디자인을 전공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원에선 가구 디자인을 공부했다. 1994년 디자인, 제작, 건축 등 다방면의 전문가를 모아 헤더윅 스튜디오를 차렸고, 소규모 프로젝트 위주로 작업하다가 2001년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과 관련한 프로젝트들도 소개된다. 강원 양양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관 ‘더 코어’와 헤더윅이 공모에 참여한 한강 노들섬 재개발 프로젝트 ‘사운드 스케이프’ 등이다. 노들섬 주변에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기관이 있어 이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10년 전부터 한국에 오간 그는 “세계가 한국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을 통해 알려진 서울이 이제 ‘누구나 가장 먼저 가고 싶은 장소’가 됐다”며 “공예와 건축 등 수준 높은 한국의 문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헤더윅 스튜디오가 큰 프로젝트를 많이 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늘 자본과 행정의 제약을 극복해왔지요. 어떤 벽에 부딪힐 때마다 우린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번 전시가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조금 더 스파크를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김보라 기자/사진=이솔 기자·헤더윅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