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미국 소수인종 대입 우대' 역사 속으로…빛과 그림자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기 첫 도입…소수인종 지위 향상 기여
보수 우위 연방대법 위헌판결에 60여년만 역사 뒤안길로
내년 차기 美대선 앞두고 새 전선 생기나…영향 주목
미국 대학들이 60여년간 신입생 선발에 적용해 온 소수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29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가 이 정책으로 백인과 아시아계 입학지원자를 차별했다며 현지 학생단체가 제기한 헌법소원과 관련해 각각 6 대 3과 6 대 2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선의에서 비롯된 차별도 차별이란 점에선 다를 바 없다며 기존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관은 어퍼머티브 액션이 좋은 의도를 지녔고 선의로 시행됐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정책은 아니었다면서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11월로 다가온 차기 미 대선을 앞두고 내려진 이번 판결이 미국 사회에 미칠 영향과 어퍼머티브 액션의 유래, 위헌결정의 배경 등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어퍼머티브 액션의 유래는
▲ 어퍼머티브 액션은 미국 내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연방정부와 계약한 업체의 직원 선발 과정에서 인종과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데서 시작됐다.

이러한 정책은 당초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흑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로 출발했으며 이후 미국 원주민과 히스패닉 등 다른 소수 인종과 여성 등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후임인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5년 연방정부 전체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 새 행정명령을 내렸고, 미국 내 각 대학도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을 잇달아 도입했다.
인종 차별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긍정적 차별'을 둬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담장 너머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키와 상관없이 모두 똑같은 발판을 주기보다는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는 더 높은 발판을 줘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 미국 내 소수인종에 미친 영향은
▲ 어퍼머티브 액션은 이전까지 유무형의 차별을 겪던 미국 내 소수인종에게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줬다.

하버드대의 경우 이 정책을 도입한 첫 해 흑인 신입생 수가 51% 급증했다.

이후 미국 대학들에서는 수십년간 인종적 다양성이 갈수록 풍부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2019년 미국입학사정관협회(NACAC)가 진행한 조사에서는 미국 대학 4분의 1가량에서 지원자의 인종이 입학에 '상당히' 또는 '보통' 수준의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영향이 없다는 대학은 전체의 약 절반 수준이었다.

이번 헌법소원 과정에서 하버드대가 제출한 자료에는 40%가 넘는 미국 내 대학과 입학시험을 보는 초중등 교육기관의 60%가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인종을 일정 부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주요 수혜자로는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꼽힌다.

반면 백인 학생들은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소수인종 경쟁자에게 밀려나는 상황을 겪었고, 높은 교육열 때문에 성적이 좋은 아시아계 학생들 역시 소수인종이면서도 입학 사정에서 역차별을 받아왔다.

-- 역차별 논란과 관련해 대법원은 그동안 어떤 입장이었나
▲ 미 연방대법원은 1978년 인종을 입학 사정 과정에서 여러 요인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판단했고, 2003년 진행된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면서 1996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주민투표 등을 통해 주헌법을 개정해 대학입시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을 금지하는 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 미시간, 플로리다, 워싱턴,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오클라호마, 뉴햄프셔, 아이다호 등 9개 주는 공립대에서 인종에 따른 입학 우대 정책을 금지한 상태다.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주의 대표적 명문 공립인 버클리대에선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의 입학이 절반으로 줄었고,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와 미시간대에서도 전체 학생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7%에서 4% 이하로 추락했다고 한다.

이런 조처가 평등권 위반이자 차별이란 소송이 제기됐지만 대법원은 2014년 어퍼머티브 액션 금지 역시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데 이어 이날 어퍼머티브 액션 자체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 미칠 영향은
▲ 이번 판결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 간 갈등을 자극하면서 내년 11월 차기 대선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작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직전 나온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판결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보수색이 짙은 대법관이 차례로 임명되면서 6대 3의 확연한 보수 우위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이 낙태권 보장 판례를 폐기한 데 반발한 여성·진보층이 결집하면서 참패할 것으로 예상됐던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유지하는 등 나름 선전한 것이다.

반면 공화당은 예상과 달리 크게 고전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 안팎에서 중간선거 부진 책임론에 시달리는 처지가 됐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선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대법원의 이번 결정 역시 최대 피해집단이 될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미 미국 정치권에선 전통적으로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지지를 누려온 민주당과 백인 지지율이 높은 공화당이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판결을 새 전선으로 삼아 전초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다만 사실상 미국 내 여성 유권자 전부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낙태권 폐기 판결과 달리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과 관련해선 찬반이 엇갈려 왔던 까닭에 정치적 파장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올해 3월 27일부터 4월 2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이 신입생 선발에 인종과 출신 민족을 고려하는데 응답자의 50%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종별로는 아시아계와 백인의 반대 비율이 각각 52%와 57%로 높았던 반면 흑인 응답자는 47%가 대입에 인종을 고려해야 한다고 답하는 등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다수의 관련 여론조사에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짚었다.

예컨대 '연방대법원이 대입에 인종적 고려를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AP 통신 등의 지난달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0%가 반대했지만, '인종과 출신 민족이 입학에 고려되어야 하느냐'고 질문한 올해 2월 로이터 여론조사에선 반대로 대다수가 "그래선 안 된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미국 격주간지 롤링스톤은 미국 내 소수인종의 사회적 지위가 차츰 향상되면서 대입에서 특혜를 줘야 할 근거가 약화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멋진 교외에 사는 상류층 흑인 학생을 입학시키는 것이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한 시골 백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를 입학시키는 것보다 진정 더 많은 다양성을 부여하는 것이겠느냐"면서 이것이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린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미국 대학입시에서 한국계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은
▲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사라지면서 대학의 인종 구성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 중 일부는 다양성 확보라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시험 성적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거나 다른 유형의 입시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도 있다.

자미르 벤-댄 템플대 조교수는 "고등 교육기관들은 사회경제적 경험에 바탕을 둔 배경에 기반해 계속 (신입생 집단의) 다양성을 증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역차별이 해소되면서 당장은 입시에서 유리해지는 측면이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지금도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아시아계와 백인의 비율이 더욱 올라가면서 미국 교육정책이 재차 바뀌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SAT를 주관하는 칼리지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1천20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 비율은 아시아계의 58%, 백인의 31%였으며, 히스패닉과 흑인은 각각 12%, 8% 비율로 훨씬 낮았다.

어퍼머티브 액션 폐기가 소수인종 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입 자문 업체 칼리지 트랜지션스의 앤드루 벨라스코 최고경영자(CEO)는 "소수인종과 다른 소외된 집단의 학생들이 계속 (대학에) 지원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