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플레트뇨프를 들여다 보는 시간 [리뷰]

지난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공연에서 미하일 플레트뇨프가 지휘봉을 잡았다. 사진=서울시향

화려하고 생동감 넘쳤던 2부 ‘백조의 호수’ 모음곡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도 흥미로웠던 건 쇼팽으로만 구성된 1부였다. 지휘자 플레트뇨프가 아니라 피아니스트 플레트뇨프가 요즘 가장 주력하고 있는 레퍼토리가 바로 쇼팽이기 때문이다.

1부의 메인 프로그램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플레트뇨프가 지휘를 하고 협연자는 선우예권이었다. 플레트뇨프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다는 건 어떤 연주자에게나 긴장될 만한 일이다. 플레트뇨프 스스로가 너무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플레트뇨프는 피아노보단 지휘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당장 피아노 의자에 앉아도, 어느 피아니스트보다 아름다운 쇼팽을 연주할 수 있는 예술가다.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가 플레트뇨프와의 협연무대를 앞두고 긴장되고 두렵다는 이야기를 했던 인터뷰도 떠올랐다. 선우예권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공연 시작 전부터 오늘의 협연자는 그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쇼팽에서 찾고 싶은 아름다움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들이 흥미로웠다. 일단 플레트뇨프는 피아노가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쇼팽은 얼마 전 도쿄 리사이틀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그것과 같았다. 이번엔 그의 열손가락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이 전달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진=서울시향
우선 플레트뇨프의 쇼팽은 간드러지지 않있다. 큰 소리로 연주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감정을 전했다. 또 극도의 절제를 통해 오히려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극대화시켰다. 그런 것들이 오케스트라를 통해서도 흘러나왔다. 반면 선우예권은 다이나믹 폭이 넓었고, 에너지가 흘러 넘치는 쇼팽을 보여주었다. 어떤 감정이든 강한 표현을 위해 강도 높게 두드렸다. 그런 이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 들어가기 어려운 연주였다. 그럼에도 돋보였던 건 플레트뇨프의 편곡된 쇼팽 협주곡이었다. 실황에서는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들렸다. 부족했던 오케스트라 파트는 풍성한 울림으로 가득 찼다. 평소 플레트뇨프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의 오케스트라 파트가 완벽하지 않다고 수도 없이 이야기 했었는데, 놀라운 해법을 들고 왔다. 쇼팽을 향한 애정도 느껴졌다.

그가 가진 특별한 애정은 1부 글라주노프의 ‘쇼피니아나’를 지휘하면서도 느껴졌다. 러시아의 작곡가 글라주노프는 쇼팽에 매료되어, 쇼팽의 작품들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했다. 플레트뇨프는 이날 이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는데, 그의 최근 쇼팽 피아노 연주가 불현 듯 떠올랐다. 역시 지난 리사이틀 때의 기억들이다.

이 연주는 왜 이렇게 이상하고도 아름다울까. 왜 그렇게 템포가 설정되어야 할까. 왜 지금 순간에 이 선율이 강조되어야 할까. 이날 무대는 그가 생각하는 쇼팽은 어떤 모습인지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특히 쇼팽의 왈츠가 오케스트라로 바뀌어 연주될 때 그랬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오히려 피아니스트 플레트뇨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서울시향이 그가 설계한 리듬을 완벽하게 소화하진 못해 아쉽긴 했다. 당연하게도 서울시향은 그의 열손가락처럼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지휘를 통해, 그가 상상하고 있는 음악세계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다양한 악기들의 조합을 통해 그의 세계가 확장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플레트뇨프 자신이 그리고 싶어한 음악이 100% 모두 무대 위로 구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플레트뇨프가 완벽하게 자기 자신의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매개체는 결국 피아노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음악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의 열손가락 뿐이다.

얼마 후면 그의 독자적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올 가을 그의 리사이틀이 계획돼 있다. 프로그램은 모두 쇼팽으로만 구성됐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지휘하던 플레트뇨프가 마침내 피아노에 앉는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