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앞당겨진 한국의 '외국인 환자 유치' 산업 [긱스]
입력
수정
서돈교 하이메디 대표 기고미국, 중국, 일본 등지의 외국인들이 성형이나 치료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하이메디는 한국에서 치료받으려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병원, 숙소, 교통, 통역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서돈교 하이메디 대표는 코로나19를 겪으며 한국의 외국인 환자 유치 산업이 한 단계 발전했다고 말합니다. 또 외국인 환자 유치는 전 세계적으로 그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가 한경 긱스(Geeks)에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에서 떠오르는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수준 높은 의료 기술과 합리적인 비용으로 한국을 방한하는 외국인 환자가 늘어나며 외국인 환자 유치 업계를 주축으로 ‘K메디컬’이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를 겪으며 ‘질환 치료’ 목적지로서의 한국의 위상이 더 높아졌는데, 미국 등 북미에서 방문하는 환자 수 증가가 이를 증명한다.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국 의료를 가장 많이 이용한 국적은 1위가 중국, 2위 일본, 3위 미국이었다. 그런데 2022년에는 미국이 1위로 올라섰다. 올해 한국을 찾는 미국과 캐나다 환자 규모는 코로나 이전 수준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의료 기술뿐 아니라 짧은 대기 시간과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강력한 무기로 장착하고 있다.
한국의 암 치료 비용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며 유럽이나 캐나다와 비교해 전문의 상담도 신속히 진행된다. 이러한 한국 의료 시스템의 장점은 북미와 유럽 환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외국인이 한국 의료를 찾는 목적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확대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러시아, CIS 지역의 고객들이 현재 가장 많이 찾는 의료 상품으로 건강검진을 꼽고 있다. 한 장소에서 두어 시간 안에 종합 검진이 이뤄지고, 그 결과를 수일 내에 외국어로 전달할 수 있는 검진 상품을 가진 국가는 매우 적다.이러한 이유로 국내 많은 병원들은 기본 검진부터 고가의 검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검진 결과에 이상 소견이 있으면 더 정밀한 검사와 치료로 이어지기 때문에 건강 검진이 활성화될 경우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의 성장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더욱 높아지며 한국 연예인 사진을 들고 강남의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찾는 동남아 국가 환자들도 지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 의료를 찾는 동남아 환자 시장 규모는 2022년에 이미 코로나 이전 수준을 돌파했다. 일본과 중국이 동남아에 비해 해외여행 개방이 늦어진 것을 감안하면 올해와 내년에는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합세해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이 더 큰 성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한다.팬데믹 이전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2019년 환자 수가 49만7000명에 이르렀으나 코로나가 발발한 2020년에 12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당시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12만 명이라는 숫자의 외국인 환자들은 2020년 2월까지 치료를 받다가 3월과 4월에 다수가 본국으로 귀국했다. 4월부터는 새롭게 입국하는 환자가 없었으므로, 산업이 완전히 '셧다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많은 스타트업과 에이전시들이 폐업하고, 병원은 인력을 감축했다.그러나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은 많은 관광사업과 마찬가지로 2022년 4월 정부의 엔데믹 선언과 함께 재부팅됐다. 놀라운 것은 폐허 이전의 상황이 아닌, 전보다 더 역동적인 시장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정부, 병원 합심으로 활기 찾은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
코로나는 많은 변화를 앞당겼다. 업계의 기존 플레이어만 그대로 복귀한 것이 아닌, 다양한 플레이어가 새로운 서비스를 가지고 뛰어들었으며, 이들이 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성형외과를 방문하려는 일본인 혹은 동남아인을 유치하는 스타트업들이 주류를 이뤘다. 팬데믹을 겪으며 성장한 스타트업들은 위기를 양분 삼아 더 다양한 문제를 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국내 병원이 외국인 사업을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SaaS 스타트업 △팬데믹으로 인해 업계를 이탈한 코디네이터의 공백을 해결하려는 스타트업 △외국인의 의료비를 지불하는 글로벌 보험사의 고충을 해결해 주는 스타트업 등이 있다.또 다른 성장 포인트는 지자체가 시장 회복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별 의료와 관광 자원의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각 지역에 적합한 전략은 시장 전체의 외연 확대에 기여한다. 2021년 외국인 환자 유치 업무가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됐다. 지자체가 주도하고 지역 병원과 유치 업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성과를 내는 지역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자체의 노력은 이제 시작이라 더욱 기대된다.또 다른 공신은 국내 병원들이다. 상급종합병원을 기준으로 보면 외국인 환자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팀과 외국인에게 더 나은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국제진료센터를 적극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대형병원들이 주도하는 눈에 띄는 변화는 이른바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한 사전·사후 관리다. 고객의 입국 전부터 귀국 후까지 전 여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국내 병원으로의 재방문을 유도하여 LTV(라이프사이클 타임 밸류)를 높이려는 노력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국가 간 경계가 의미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이메디는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몽골과 카자흐스탄 현지 사무소 개소를 비롯해 해외 의사 파트너를 늘려 환자와 연결될 수 있는 창구를 확대한 것이 첫 번째다. 사무소장으로 현지 의사를 채용하고 환자가 한국 의료진과 비대면 진료를 진행하고 유치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힘썼다. 하이메디를 통해 비대면 진료 시 고객의 현지 주치의가 동석하는 것은 물론이다. 팬데믹이라는 특수환 상황에서 환자들이 가질 수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고민을 해결하는 데 비대면 진료가 톡톡한 역할을 했다. 한국 의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한국행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한국 의료진과 접점을 만들어 신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 2020년 뇌종양 진단을 받은 한 몽골인 환자는 종양의 위치가 좋지 않아 현지에서는 치료가 어렵다는 소견을 받았다. 하지만 하이메디의 원격진료 지원 서비스를 통해 한국 의료진과 비대면 진료를 받았고, 몽골에서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감마나이프’ 수술이 가능하다는 소견을 받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이 환자는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되찾았다.
다른 케이스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 증상을 보인 2살짜리 아이는 본국에서 진단명이 내려지지 않아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이메디를 통해 한국 병원 의료진과 원격진료를 받은 환자와 보호자는 뇌전증 소견을 받고, 한국에서 정확한 진단 후 치료를 했다. 환자들은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담당 의료진과 원격진료를 받으며 사후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국가 간 이동이 까다로웠던 팬데믹 기간에 외국인 환자가 한국 의료를 조금 더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시작한 원격진료가 이제는 환자 유치의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됐다.
암흑기와 같았던 팬데믹이 지나고 방역 및 입국 규제 완화 정책 등이 시행되면서 환자 유치 시장도 반등하기 시작했다. 엔데믹 전환 이후 하이메디의 외국인 환자 유치 수는 급격한 상승 그래프를 그려냈다. 2023년 1~4월 유치 환자 수는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139% 증가했다.
무궁한 글로벌 시장의 기회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잠재력이 크다. 코로나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현 시점에서 정확한 글로벌 시장 규모를 집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전문기관들이 공통적으로 코로나 이전 수준(약 100조원)을 수 년 내 돌파하고 장기적으로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는 점이다.국내의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은 세계적으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국 의료의 첨단기술과 뛰어난 의료진에 기반한 본원적 경쟁력이 한국 시장의 장기적 성장을 견인하기 때문이다. 해외 의사들의 한국 의료 연수 문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하이메디팀은 K메디컬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체감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점에서 국내 경제에 이바지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의료 수요를 늘림으로써 의료 산업 발전에도 기여한다. 아직까지 디지털 기술의 침투가 낮아 혁신의 폭도 크다. 정부가 유망 시장으로 점찍으며 적극적인 지원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K메디컬을 선도할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해 역동적인 생태계가 조성되길 희망한다. 서돈교 | 하이메디 대표△ 전 딜리버리히어로(현 요기요) 전략실장
△ 전 베인앤드컴퍼니 경영 컨설턴트
△ 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제조시스템 담당
△ 연세대 컴퓨터산업공학 졸업
△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MBA 학위 취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