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혁신과 질서: 절차에 저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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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최근 대법원에서 최종 결정된 ‘타다’ 사태를 돌아보면서 혁신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이후 10여 년간 외국 금융기관에서 일하다가 2014년 다시 한국의 준정부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2014년 맞이한 ‘규정’과 ‘절차’는 15년 전 사회 생활 초반에 배운 ‘규정과 절차’보다 더욱 세밀화되고 정치화돼 조직 구성원의 자율적 사고가 거의 불필요한 수준으로까지 퇴행했다. 그런 규정과 기존 질서의 퇴행적 발전의 결정판이 타다 사태라고 생각한다.최초 질서 형성과 규정화는 사회적 자본 배분과 관련된 의사 결정의 ‘효율화’를 기본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후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게 규정 자체를 근거로 ‘이해관계자들만의 이익을 보호하는 장치’로 전락하는 것이다. 택시를 이용하는 다수 고객은 침묵의 대가로 그들의 편익은 법률과 규정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회 초년생 시절 당시 선배들이 “절차가 너를 보호한다. 규정대로만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절차가 추구하는 목표와 목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자리를 지키는 합리적 수단이 된 것이다.
제프 베이조스는 2017년 아마존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객 우선과 함께 “절차에 저항하라”고 아마존의 최우선 원칙을 천명했다. “대기업(Day2)은 결과가 지닌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관련 프로세스를 잘 지켰는지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아마존은 언제나 첫날(Day1)이 될 것”을 강조했다. 대기업병의 근본 원인인 관료화 문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최고의 대응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절차란 처음에는 가장 효율적인 의사소통이며 집행에 대한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제정된 절차는 관련 구성원의 상당한 노력 없이는 변화, 수정이 불가능한, 자체 생명력을 지닌다. 규정과 절차가 의도한 당시의 목적과 목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를 상실한 채 자체 생명력으로 기득권화하면서 혁신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전락한다. 굳이 혁신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상의 작은 삶의 변화마저도 규정과 절차화하지 않으면 수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절차를 만드는 사람, 지키는 사람 모두가 궁극적으로 해당 절차와 규정을 통해 달성하려고 했던 목표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재정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는 없어지고 자율성과 유권해석은 본인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수단이 돼버린다.
각국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나 규제일몰제를 도입하고, 기업들이 주기적인 규정 현실화와 간소화 작업을 하는 이유는 급격한 현실 변화 때문이며, 또 후행하는 규정과 절차를 혁신의 걸림돌로는 작용하지 않게 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