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먹은 듯한 미술 경매 시장...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작품으로 보는 상반기 경매 결산
올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은 마치 더위를 먹은 것처럼 축 늘어졌다. 너도나도 미술품을 경쟁적으로 사들이던 작년과 달리,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경매 실적이 고꾸라졌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9개 경매사들의 작품 거래액은 811억원으로 1년 전(1446억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큰 손'들은 수억원대 명작을 구하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불황이야말로 명작을 합리적인 값에 사들일 적기라고 판단한 것. 올해 상반기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린 작품 톱 5를 정리했다.

①고미술품의 반전…70억에 팔린 조선백자

올 상반기 경매에서 최고가 기록을 쓴 건 '백자정화오조룡문호'다. 지난 5월 마이아트옥션 경매에서 70억원에 팔렸다. 국내외 고미술품 경매 역사를 통틀어 최고가다. 올 초 크리스티 경매에서 60억원에 팔려 화제가 된 달항아리보다도 비싸다.

고미술품이 최고가를 기록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 백자가 비싸게 팔린 비밀은 '용'에 있다. 백자 겉면에 왕실의 권위를 뜻하는 5개의 발가락을 가진 용이 그려져있는데, 이런 그림이 새겨진 백자는 드물다는 설명이다. 마이아트옥션 관계자는 "1990년대 개인 컬렉터에게 팔린 후 한 번도 수리된 적 없이 완벽한 상태로 보관된 작품"이라고 했다.

②25억 기록한 쿠사마의 '땡땡이' 그림

2위는 요즘 경매시장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인피니티-네트 그린(TTZO)'다. 초록색 배경에 검은색 땡땡이 무늬가 가득한 이 그림은 세로 1.9m, 가로 1.3m의 대작이다. 지난 3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25억원에 낙찰됐다.

다만 미술계에선 '경기침체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은 더 비싸게 팔렸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애초 서울옥션은 이 작품의 시작가를 30억원으로 잡았다. 최고 감정가는 50억원이었다. 미술시장이 꺾이면서 이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된 것이다.

③재출품으로 새주인 찾은 김환기 '북서풍'

쿠사마의 작품의 뒤를 이은 건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가 1965년 그린 유화 '북서풍 30-Ⅶ-65'이다. 올해 첫 케이옥션 경매에 나와 15억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김환기의 시그니처인 '점화' 시대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색색깔의 점을 그리면서 그는 점화에 대한 확신을 얻기 시작했다. 그만큼 김환기의 작품세계에선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이 작품은 지난해 11월 경매에서 추정가 20억~40억원에 나왔다가 시장이 움츠러들면서 출품이 취소됐다. 이후 시작가를 낮춰 다시 경매에 올랐다.

④낙찰액 1위…경매시장 떠받친 이우환

'추상미술 거장' 이우환도 상반기에 억대 기록을 썼다. 그가 2000년 그린 '조응' 시리즈 4점은 케이옥션 3월 경매에서 13억원에 팔렸다. 이우환의 작품은 올 상반기 경매시장을 떠받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반기에만 경매에서 72억3000만원어치가 팔려 작가별 낙찰총액 1위를 차지했다.

이우환의 작품을 구하려는 수요보다 공급이 적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관계자는 "이우환의 작품 대부분은 미술관 등 기관에 우선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개인이 구매할 수 있는 작품은 소수"라고 설명했다.

⑤페이스가 반한 유영국, 10억원대로

서울옥션이 3월 홍콩경매에 출품한 유영국의 1964년작 '워크'는 다섯 번째로 비싸게 팔린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10억원부터 입찰을 시작해 경쟁을 벌이다 10억7000만원에 낙찰됐다.3년 전만 해도 10억원이 넘지 않았던 유영국의 작품 값은 올 초 세계적인 갤러리인 페이스의 전속작가가 된 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 초 경매 낙찰총액은 37억7000만원으로 이우환(72억3000만원), 김환기(41억3000만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낙찰률은 92%로 50~60%대에 그친 다른 작가들보다 독보적으로 높았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