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리는 외국인 무조건 잡아간다…공포의 '中 반간첩법'

한미일, 경계령 속 파장 주시

'국가안보와 이익' 모호한 잣대로 자의적 법집행 우려
자료 저장이나 사진 촬영도 단속 가능성

"예측 가능성, 공정성, 투명성 우려"
지난 3월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 사진=REUTERS
중국에서 통계 자료 검색이나 사진 촬영까지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는 고강도 반(反)간첩법(방첩법)이 1일 발효했다. '국가안보 및 이익'이라는 모호한 기준과 중국 당국의 자의적 법 집행 가능성 때문에 외국인의 중국 내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간첩죄 성립 안해도 행정구류

중국은 2014년 방첩법을 제정했으며 9년 만인 지난 4월 개정법을 통과시켰다. 개정 방첩법은 형법상 간첩죄(징역 3년 이상, 무기징역·사형도 가능)와 국가기밀누설죄(최대 무기징역)의 하위법 개념으로, 간첩행위의 범위와 수사 관련 규정 등을 담았다. 간첩행위의 대상으로 기존 '국가기밀'에 '국가안보와 이익'을 추가한 것이 개정 반간첩법의 주된 논쟁거리다.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련한 문건·데이터 등에 대한 정탐·취득·매수·불법 제공을 간첩 행위로 규정했다. 또 국가기관·기밀 관련 부처, 핵심 정보 기반시설 등에 대한 촬영과 사이버 공격을 간첩 행위로 본 부분도 논란이다.

중국 공안 당국이 특정 행위를 '안보'나 '국익'과 관련 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만큼, 자칫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단속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가나 주재원, 유학생 등 중국 내 외국인, 그리고 외국인과 자주 교류하는 중국인은 외국에 비밀을 넘기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중국 내 정보, 통계 등을 검색·저장하거나 주고받을 때 문제가 될 소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개정 방첩법은 또 간첩 혐의 관련 행정처분을 강화해 특정인의 행위가 형법상 '간첩죄' 수준에 미달하더라도 최장 37일에 달하는 행정구류를 부과해 사실상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제3국을 겨냥한 간첩 활동이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경우에도 반간첩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북한 관련 첩보 활동도 중국 방첩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컨설팅 업무 특히 유의해야"

중국 내에선 개정 방첩법이 큰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관영 매체들이 개정법에 모든 중국 국민에게 스파이 행위를 신고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음을 알리는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한미일 등은 법 시행을 자국민 보호와 관련한 중요 사안으로 보고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지난달 26일 "중국 국가안보·이익과 관련 자료, 지도, 사진, 통계자료 등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노트북 등에 저장하는 행위, 군사시설 등 보안통제구역 인접 지역에서의 촬영, 시위현장 방문과 촬영, 중국인에 대한 포교, 야외 선교 등에 유의해 달라고 공지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방첩안보센터(NCSC)는 지난달 23일 공지에서 개정된 중국 반간첩법의 스파이 행위 구성요건이 모호하고, 기업 자료에 대한 당국의 접근과 통제가 개정 전에 비해 훨씬 용이하게 돼 있어 정상적인 경영활동도 범죄행위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간첩 혐의로 자국민이 중국 당국에 체포된 전례가 많은 일본도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혼마 데쓰로 중국 주재 일본 상공회의소 회장은 교도통신에 "중국 시장에서 예측 가능성, 공정성, 투명성이 유지되는지 여부가 큰 우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2014년 중국에서 반간첩법이 처음 시행된 이후 간첩 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구금된 일본인은 17명(5명은 현재 구금 상태)에 이른다.

방첩법은 중국 내 기업 활동에도 상당한 제약이 될 전망이다. 중국 로펌 킹앤우드맬리슨의 이석호 변호사는 "국방·군수, 금융·화폐, 첨단기술, 에너지 자원, 의약·위생 등 중국이 핵심 분야로 지정한 산업에서 컨설팅 업무는 특히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중국 시장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 모든 데이터가 국가기밀이나 안전 및 이익에 연루되지 않는다는 부분을 반드시 명시하라고도 조언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