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징검다리 - '새로운 길',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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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징검다리

새로운 길

김수복길이 없으면
마음과 마음 사이로
징검다리를 놓아야지
서로 마주보고 얼굴을 닦아주어야지
가시밭길이더라도 서로 웃어주어야지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웃으며 가야지

[태헌의 한역]
石矼(석강)
- 「新康(신강)」

若使兩方(약사양방)
無一小陌(무일소맥)
心與心間(심여심간)
應設矼石(응설강석)彼此相對(피차상대)
相拭面容(상식면용)
雖當荊路(수당형로)
須作笑閧(수작소홍)

渡川向林(도천향림)
越嶺向莊(월령향장)
相與拍肩(상여박견)
含笑跳踉(함소도량)

[주석]
* 石矼(석강) : 징검다리, 돌다리.
* 新康(신강) : 새로운 길. ‘康’은 보통 오달(五達)의 길, 곧 오거리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여러 군데로 막힘없이 통하는 큰 길을 가리키기도 한다.
* 若使(약사) : 만약, 만약에, / 兩方(양방) : 양쪽, 양쪽에.
* 無(무) : ~이 없다. / 一小陌(일소맥) : 하나의 작은 길, 작은 길 하나.
* 心與心間(심여심간) : 마음과 마음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에.
* 應(응) : 응당 ~을 해야 한다. / 設(설) : ~을 설치하다, ~을 놓다. / 矼石(강석) : 징검돌, 징검다리.
* 彼此(피차) : 피차, 저쪽과 이쪽, 서로. / 相對(상대) : 서로 마주하다, 서로 마주보다.
* 相拭(상식) : 서로 흠치다, 서로 닦아주다. / 面容(면용) : 얼굴.
* 雖(수) : 비록 ~일지라도. / 當(당) : ~을 만나다, ~을 마주치다, / 荊路(형로) : 가시밭길.
* 須(수) : 모름지기 ~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한다. / 作(작) : ~을 만들다, ~을 짓다. / 笑閧(소홍) : 크게 웃음, 큰 웃음.
* 渡川(도천) : 내를 건너다. / 向林(향림) : 숲을 향하다, 숲으로.
* 越嶺(월령) : 고개를 넘다. / 向莊(향장) : 마을을 향하다, 마을로.
* 相與(상여) : 서로 더불어, 함께. / 拍肩(박견) : 어깨를 <가볍게> 치다. ※ 이 대목은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구절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含笑(함소) : 웃음을 머금다, 웃다. / 跳踉(도량) : 펄쩍펄쩍 뛰다, 깡충깡충 뛰다. 원시의 “가야지”를 압운(押韻)과 시의(詩意)에 맞추어 변형시켜 표현한 말이다. [한역의 직역]
징검다리

만약 양쪽에
작은 길 하나 없다면
마음과 마음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아야지

서로 마주보고
서로 얼굴 닦아주어야지
비록 가시밭길 마주쳐도
모름지기 크게 웃어야지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 넘어 마을로
서로 어깨를 치며
웃으며 뛰어가야지

[한역노트]
이 시의 주지(主旨)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이 없으면 새길을 만들고, 함께 가야 할 길은 웃으면서 가라는 것이다. 서로 마주 보며 얼굴을 닦아주는 행위는 상대방의 얼룩, 곧 결점을 없애주거나 그 결점을 관용하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가시밭길을 가면서 서로 웃어주는 행위는 상대방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라는 뜻으로 읽혀진다. 상대방의 결점을 안아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가 될 때, 우리는 웃으면서 함께 인생이라는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역자는 학창시절에 길과 관련한 여러 명언 가운데 아래와 같은 글을 무던히도 좋아했더랬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것이 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魯迅)의 「고향(故鄕)」이라는 제목의 수필에 보이는 이 글을 떠올려보노라면, “복사꽃과 오얏꽃이 <구경하러 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 아래에 저절로 오솔길이 생긴다.[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고 한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노신의 길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을 말한 것이라면, 중국 고전 속의 경구(警句)에서 언급한 길은 사람의 인격이나 학문의 성숙도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므로 그 지향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그 길이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모든 길이 다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 시대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저절로 만들어지는 길보다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길이 더 요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람이 내는 길이 어찌 땅 위에만 있겠는가? 사람은 날짐승처럼 허공에도 길을 내고, 물고기처럼 물속에도 길을 낼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보이지 않는 전파의 길을 내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의 길을 내기도 하니, 영장류(靈長類)란 달리 길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이 시에서 주된 소재이자 제목으로 다루어진 ‘징검다리’는 다리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길이고, 상호간의 노력에 의해 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앞서 얘기한 길들과는 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길은 경우에 따라 의식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과 사이에는 강이 흐르고 있다. 그것이 애정의 강이거나 증오의 강이라면 쌍방 사이에는 어떤 관계라는 것이 이미 존재해 왔을 개연성이 크다. 그 어떤 관계도 없다면 둘 사이에는 아마도 지금 무심의 강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증오의 강이 넓이를 더해 사이가 멀어지고 있거나, 무심의 강이 아무런 변화없이 흐르고만 있을 경우, 서로가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이 ‘징검다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다리라고 해서 가식(假飾)이나 작위(作爲)와 같은 부정적인 개념들을 먼저 떠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윤동주(尹東柱) 시인의 「새로운 길」을 모티브로 해서 지은 시이다. 이 시에 붙여진 부제(副題)가 이를 암시하고 있고, 시의 본문 6행과 7행인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가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에서 그대로 따온 시구임에도, 이 사실에 대한 사전(事前) 이해가 부족하다면 시를 전혀 엉뚱하게 해석해버릴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글에서든 시에서든 이와 같은 작자의 암인(暗引)이 오해를 부를 소지가 다분함에도 시인이 구태여 이를 속속들이 밝히지 않은 것은, 작자의 오만이나 게으름이 아니라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작자가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일종의 수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에 대해서는 역자가 이미 2021년 6월에 칼럼으로 작성해둔 것이 있으므로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기 바란다.

https://www.hankyung.com/thepen/lifeist/article/202106210739Q

가야만이 의미가 있는 길은 누구와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평탄한 길이 돌밭길로 여겨지기도 할 것이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작은 언덕길처럼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함께 웃으면서 가는 길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생행로가 되어준다면 우리의 인생길이 마냥 허허롭지만은 않을 것이고, 그 길이 바로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야할 새로운 길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한 고향 친구의 카톡 대문글이 “웃으며 죽자”인데, 원없이 그러나 후회없이 웃으면서 걸어가고 있는 인생길이라면, 우리가 언젠가 다다르게 될 그 길 끝자락에서 웃으며 저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역자가 지난 6월 한 달 내내 수술보다 고통스러웠던 고민(苦悶)의 날들과 가료(加療)의 날들을 차근차근 보낸 덕에 이제는 얼추 다 나은 듯하니, 조만간 그 친구랑 마주하여 삼겹살에 소주 곁들이면서 이물없는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

역자는 연 구분 없이 8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사언 12구로 한역하는 과정에서 원시에 없는 내용을 일부 보충하였다. 특히 마지막 행인 “웃으며 가야지” 앞에는 “서로 어깨를 치며”에 해당하는 한역(漢譯) 구절을 넣어 의도적으로 시행(詩行)을 늘리기도 하였다. 짝수 구마다 압운을 하였지만, 원시의 내용을 3단으로 나누어 한역하면서 각 단마다 운을 달리하였다. 그리하여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陌(맥)’과 ‘石(석)’, ‘容(용)’과 ‘閧(홍)’, ‘莊(장)’과 ‘踉(량)’이 된다.

2023. 7. 4.<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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