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만원 웃돈 줘도 못 구하던 그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

[arte] 박은아의 탐나는 책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북하우스, 2022
(기획·편집 허정은)
그거 도대체 언제 나와? 누가 내? 그런 물음만 나돌고 세상에 출현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세상에 없던 심오한 세계관을 표방하는 걸그룹이라든지, 내 정신으로 나를 대신해 원고를 써주는 인공지능(AI)이라든지…그런 전설적인 건 나올 게 분명하지만 언제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드론카라든지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처럼 기다리면 나타나는 것들도 있다.

내 주변에도 늘 그런 것들에 대한 소문이 나돈다. 걔가 5년째 깔고 앉아 있다더라(그 책은 나온다고 한 게 언젠데 아직도 안 나와), 1억이라던데(그거 판권 팔렸다던데 얼마였을까), 어디서 하고 있겠지(이렇게 유명한데 왜 번역이 안 됐지)… 그래서 2020년 겨울 출판사 이메일에 ‘다락방의 루나틱The Madwoman in the Attic’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날아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예감했을 것이다, 이제 나오겠구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2009년 야심차게 출간되었다 절판된 이 책은 중고서점 등에서 수십만 원에 거래되며 ‘아는 사람은 아는 그 책’으로 유명했다. 그러다 2022년 동명의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는데, 이번에는 북펀딩 때부터 모금액 1000퍼센트를 달성하더니, 출간 즉시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라 일주일 만에 중쇄를 찍었고, 지금도 모 서점 종합 100위권 안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10여 년 만에 무엇이 바뀌었기에 19세기 영미 여성문학을 주로 다루는 1168쪽짜리 비평서가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고 있을까?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닿을 수도 불평할 수도 없고, 단지 그것에 대해 너무 자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받는 (사회제도의 근간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악”(12쪽), 그것을 알려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난 것일까?

여성의 계보, 여성의 문학 전통이 따로 있다는 말이 이제야 통용 가능해진 건 아닐 것이다. 많은 독자의 요청과 환대 속에서 개정판을 펴낸 허정은 편집자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주의와 관련된 문학 이론과 지식에 대한 갈증이 컸고 (…) 깊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보았다. 그렇게 말하는 이 사람의 성실성이 책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이 검토했던 이 책이 지금의 수준으로 많은 독자에게 널리 읽히며 성공적으로 유통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작품을 알아보았을 뿐 아니라 감당까지 할 수 있는 실무자였기 때문이라고.대학 강의가 집필 계기였던 이 책은 “복잡하고 가끔은 공모의 분위기를 풍기며 때로는 유쾌한 대화”(34쪽)를 강의실에서처럼 착실히 풀어간다. “작가들은 순종적인 아내, 어머니, 집 안의 천사, 심지어 착한 독신 이모라는 인습적 역할의 감수를 요구받았지만, 이 요구가 더 많은 (방랑하고 배우고 쓰고 자유롭게 사랑하며 현재 상황에 도전하는) 자유를 향한 욕망과 나란히 함께하기는 어려웠다.”(13쪽) 저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무엇이 작가들의 근원적 불안이자 원동력이었고, 무엇이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이었는지를 독자도 느낄 수 있는 지적 흥분 속에서 세밀히 탐구한다.

성공적인 복간 덕분인지 저자들이 펴낸 40년 만의 후속작 <여전히 미쳐 있는(Still Mad)>도 올여름 번역 출간된다. 수전 손택, 에이드리언 리치, 어슐러 K. 르귄, 토니 모리슨, 조앤 디디온, 리베카 솔닛, 글로리아 스타이넘, 이브 세지윅 등 새롭게 포함되었다는 작가들, “여전히 미쳐 있다”는 제목과 여기서 내가 보고 들을 일들을 연결지어본다.

유해한 젖가슴 타령에 취해 있던 남작가들을 그토록 오랜 시간 찬양하더니 그들이 폐기되자 여작가들을 무해하다고 얕잡아보는 곳, 그래서 낭만을 버리고 광기를 쏟아내면 창작이 아닌 발작이라고 비웃는 곳, 더 새로운 작품(작가) 더 진보한 작품(작가) 흠결 없는 작품(작가)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곳, 그러면서도 여작가 한 명을 거대악의 상징으로 만들기는 수월할 뿐더러 도덕적이라고까지 여겨지는 곳에서 진실한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당연히 여전히 미쳐 있다. 하지만 작품은 늘 거기에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해석 방법”임을 저자들은 다락방에서 이미 보여주었다.
Toni Morr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