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파리와 서울 '예술'로 이어온 한국 청년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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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신미래의 파리통신파리가 낭만의 도시로 자리매김한 오랜 시간의 중심에는 분명 문화, 예술이 있다.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등의 대가들이 이끌어갔던 19, 20세기 예술 황금기는 오르세, 오랑주리 미술관의 유산이 되었으며, 알베르 카뮈,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같은 지성인들의 토론의 장이었던 레 두 마고 (LES DEUX MAGOTS)는 유명 명소가 되어 파리에 남아있다.
서울~파리로 이어지는 재불청년작가협회 40주년 기념전
AJAC 이름으로 1983년 설립한 순수미술단체
파리에는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의 예술 전성기를 기억하며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랑스의 오랜 역사와 예술적 낭만 속에서, 더 발전된 자신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한국 예술가들이 있다. 재불청년작가협회 AJAC (L’Association des Jeunes Artistes Coréens)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젊은 한국작가들의 순수미술단체다. 1983년, 프랑스 전역 미술대학 (Ecoles d'arts·Universités) 출신 한국작가들에 의해 창립됐다. 해외 한국인 미술 단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창립 당시인 1980년대 초,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은 소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예술의 영향력은 실로 미비했다. AJAC은 한국예술이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던 프랑스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교류 촉진과 한국 작가들 사이의 정보 교환, 예술 활동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AJAC의 첫 글자는 협회(Association)를 의미하는데, 이는 당대 다른 예술 단체들의 명칭에 사용되었던 그룹, 학파와는 차별점을 둔다. 이에 대해 AJAC의 초대회장인 권녕호 화백은 “한 가지의 이념에 국한되는 것을 지양함으로써,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 개념을 수용, 존중하고 개방성을 통한 발전 가능성에 초점을 두었다”라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현재 AJAC에는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품을 하는 30-40여 명의 작가들이 소속 되어 있다. 이주, 이동의 경험, 정체성의 변화, 프랑스와 한국 양국가에서 흡수한 예술적 감각과 경험들은 작가 각자의 아카이브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축적된다. 이들은 한국 작가라는 정체성 기반 위에 다문화 환경에서의 확장된 경험을 더하여 고유한 작품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들은 협회 내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창의적 풍요를 더하고 있으며, AJAC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더 큰 예술적 시너지를 발휘하며 작품 활동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AJAC의 이러한 재외 예술가로서의 지난 활동을 기념하는 40주년 전시가 열린다. AJAC 40주년 기념전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서울 스페이스 사직 갤러리에서 5월3일 부터 6월 10일까지 열렸고, 2부는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11월경 열릴 예정이다. 한국 전시에는 현 협회 회원 24명과 전 명예 회원 25명이 참가하여 총 6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를 양방향으로 알리는 40년간의 협회 활동을 재조명하고, 예술을 통한 두 나라의 문화교류를 위해 함께 힘써온 프랑스 내 한국 공공기관과의 친목 관계 유지와 도모를 위해 준비되었다. 또한 신진작가로서 예술 활동을 해 나가는 회원들의 작품 활동을 고취함과 동시에 선, 후배의 작품들을 함께 구성하고 기획함으로써 회원들 간의 화합을 이루기 위한 취지로 마련되었다. 지난 5월 3일에 개최된 오프닝에서는, 40년간의 활동을 축하하는 포이리히 피아노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갤러리 안에는, 페인팅, 조형, 영상, 사진의 방대한 작품들이 각각의 공간에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긴 시대에 거쳐 한 협회에서 활동하였던 작가들이 참여한 만큼,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표현 기법의 작품들이 설치되었다. 이는 여백과 단색의 미를 강조하여 다소 정적이었던 한국 고전 미술에서 더 나아가, 국제 미술 무대에서 점차 변화한 한국 현대 미술의 시대적 흐름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다.
갤러리 한편에는 권녕호 화백의 강렬한 푸른 색감의 작품이 걸려있다. 권녕호 화백은1985년 파리 국립 미술학교 학사를 졸업하였으며, 유럽의 전위 예술 그룹 코브라(CoBrA)의 일원인 피에르 알레친스키(Pierre Alechinsky) 제자가 되어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던 화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프랑스에 있었던 시절,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주제로 한 ‘군상’시리즈를 그려 나갔으며, 이후 민화의 콘셉트를 착안하여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반영된 독창적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권녕호는 점, 선, 면과 같은 기초적 요소와 다양한 색채의 조합 그리고 유유한 기호들로 자신의 표현을 함축하고 비워내며 간결함 속 작가의 예술 정신을 설명한다. 작가는 자신의 추상 언어를 시대적 감각으로 표현하며 상징적으로서의 이미지가 갖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무제’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화백 특유의 그린 듯 지운듯한 입체적 터치감과 원색적이지 않은 오묘한 블루의 색감에서 동양적인 신비감과 세련됨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는 동양적 미의식에 대한 탐구와 정체성의 고민을 가지고 동양의 여백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정서와 서구적 물성과 표현 양식을 빌어 자신의 작업을 재구성하였다.한편, 2022년에 이어 올해까지 AJAC의 회장을 연임하고 있는 최형섭 작가의 작품에는 반복해서 그려진 리드미컬한 선들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모습을 조금씩 달리하고 있는 선들은 채도와 색감에 따라 극적인 원근감과 입체감을 만들어낸다.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미술 전공하고 마르세유 국립 미술학교 예술 학과 석사를 졸업한 그는 종종 동양적 개념에서 착안한 작업적 아이디어를 자유로운 터치와 형태로 구현해낸다. 그리하여 그의 작업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미적 요소가 돋보인다.
작가는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길을 내는 행위, 선을 긋는 행위가 그의 회화 작업의 수단이며 목적이다. 그는 파도를 타듯 몸의 리듬을 느끼며 화폭 위에 선을 긋는다. 매 순간 변화하는 삶의 파도 위에 균형을 잡으며 묵묵히 나아가고 싶은 그의 바람과 의지를 담은 것이다. 선의 탐구는 어느덧 지층처럼 쌓여 시간의 축적과 함께 화폭 위에 풍경을 드러낸다.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 반복되는 선과 색들이 바로 이전 선의 단점을 상충 시킨다. 이들이 다른 선들과 조화를 이룰 때 예상 너머의 결과가 나온다. 최형섭 작가는 우리는 매 순간 변화하는 파장, 울림 속에서 살아가며 길을 내고 균형을 맞춘다고 이야기한다.
60여 개의 다른 이야기들이 한데 모인 이번 전시는, 프랑스의 문화와 결합하여 점진적 발전을 이루어 온 한국 문화의 눈부신 행보의 결과이다. 조그마한 조약돌이 큰 물결의 파동을 일렁이듯, AJAC이 보여준 작은 예술적 움직임의 적축들은, 앞으로 국제 미술 무대로 나아갈 한국 현대 미술의 방향을 제시한다. 40주년을 전환점으로, 어쩌면 프랑스에서 한국의 미술사를 새로이 써 내려가고 있을 재불청년 작가들의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재불청년작가협회 AJAC 40주년 기념전 2부 전시는 11월경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만나볼 수 있다.
권녕호, 무제, 2020, 캔버스에 혼합 매체, 61 X 61 cm
최형섭, Sentimographie N.22-07.11, 2022, 캔버스에 혼합 매체, 41X 32 cm
최형섭, Sentimographie N.23-03.09, 2023, 캔버스에 혼합 매체, 27 X 22 cm
최형섭, Sentimographie N.23-03.09, 2023, 캔버스에 혼합 매체, 27 X 22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