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미래硏 "목소리 큰 열성 지지자가 정치 양극화 부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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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공수처법 제정' 등 이후 양극화 심화한국 국회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정치 양극화'를 여야의 소수 열정적 지지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국회미래연구원 분석이 나왔다. 이들이 당 안팎에서 온라인 당원이나 강성 지지자로 활동하며 생각이 다른 의원들 목소리를 억압해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설명이다.
"정치 양극화할수록 법안 발의 폭증"
연구원은 또 "한국 정치는 이념이나 정책 차이보다 '좌파 척결' '적폐 청산' '검찰 개혁' 같은 비실체적인 권력 투쟁에 매몰됐다"며 "일반 시민과는 무관한 여야 그들만의 권력 싸움으로 인한 양극화"라고 지적했다. 미래연구원은 이날 '한국의 정치 양극화' 보고서를 통해 국내 양극화 정치의 특징 13가지를 분석했다. 보고서는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 정치, △정당 내 파벌 양극화,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보다 권력 이슈로 갈등하는 정치, △공존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혐오의 정치, △법안 폭증과 과도한 입법 경쟁, △대통령 의제가 갖는 과도한 지배력, △대표되지 않은 사회 갈등, △열정적 지지자와 반대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수 지배의 강화, △여론 동원 정치의 심화, △양극화된 양당제의 출현, △추종과 혐오의 팬덤 정치를 양극화 유형으로 분류했다.
미래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진 때는 2009년과 2019년 두 시기로 나뉜다. 정치 양극화와 관련된 기사가 2009년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갈등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2019년 다시 급증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상훈 연구위원은 "2008년 말 FTA로 여야 간 폭력 충돌이 이어진 이후 양극화가 중요한 정치 의제로 떠올랐다"며 "2019년에도 '공직선거법 개정' '공수처법 제정' 등으로 여야 폭력 충돌, 고발, 장외집회가 난무하자 극심해졌다"고 분석했다.연구원은 한국 정치의 양극화는 정당들 사이의 갈등보다 같은 정당 내부에서 더 심각한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당내 파벌은 최고 권력자 개인과의 거리감을 두고 전개된다"며 "이는 친이·친박, 친문·비문, 친윤·비윤, 친명·비명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대통령 관련 의제를 두고 사활적으로 싸우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비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것"도 한국 정치 양극화의 역설적 특징이라고 꼽았다. 박 연구위원은 "국회를 교착 상황으로 이끄는 쟁점 대부분은 대통령과 관련된 의제고, 이런 쟁점은 정권이 바뀌면 갑자기 사라지거나 입장이 쉽게 바뀐다"고 말했다.
특정 입장을 가진 소수 열정 집단이 정당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해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는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평등한 참여와 다수 지배 원리를 위협하고 '소수 지배'를 강화한다"고 비판했다. 또 "목소리 큰 소수 집단이 정치를 지배해 여야 정당 사이에서 정책적 협력 공간이 협소해진다"라고도 꼬집었다.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팬덤 정치' 관련해서는 "팬덤 정치가 당내 다원주의를 억압하고 비합리적 공격과 욕설 정치를 가져온다"고 했다.
정치 양극화의 심화가 법안 폭증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특히 양극화가 심해진 18대 국회부터 이런 양상이 한국 의회 정치의 두드러진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위원은 "17대 국회 4년 동안 전체 법안 발의 건수(6387건)의 절반을 18대 국회 8개월 만에 쏟아냈다"며 "20대 국회의 법안 발의는 미국의 2배, 프랑스의 23배, 영국의 91배에 달한다"고 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