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국에 침체가 오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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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뉴욕 특파원끝도 없는 평야를 달리니 광활한 옥수수밭 너머로 수많은 크레인이 보였다. 주변은 온통 공사판이었다. 지난 6월 초 찾아간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얘기다. 1200에이커(축구장 800개 규모)에 달하는 삼성 공장 터뿐 아니라 수십여 개 협력사도 인근에 사업장을 짓고 있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미국은 올해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9%까지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미 중앙은행(Fed)은 작년 3월부터 열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렸다. 40년 만에 가장 강력한 긴축이다. 하지만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율 2%에 달했고, 2분기에도 2% 이상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 추세 성장률을 넘는다.
제조업에 2조4000억달러 지원
골드만삭스는 12개월 내 침체 확률을 35%에서 25%로 낮췄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침체 시기를 올해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미뤘다가 다시 내년 상반기로 수정했다.미국 경기에 대한 전망이 빗나간 가장 큰 이유는 강력한 고용 때문이다. 실업률은 4월 3.4%에서 5월 3.7%로 올랐지만, 여전히 역사적으로 낮다. 고용이 버티자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유지되고 있다. 월가는 고용이 버티는 이유를 기업의 ‘노동력 비축’ 때문으로 본다. 팬데믹 이후 구조적 인력 부족을 겪은 기업들이 과거처럼 쉽게 해고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제조업 리쇼어링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 의회는 지난 2년간 산업 역량을 높이기 위해 △2021년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IIJA) △2022년 인플레이션 감소법(IRA)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등 세 가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JP모간에 따르면 미국은 이 법을 통해 인프라, 친환경 에너지, 반도체 분야에 거의 2조4000억달러를 지원한다. 이는 기업들의 제조업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1월 910억달러(연율)였던 제조업 건설 지출은 올해 4월 1890억달러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해 이 액수가 10년 전보다 네 배 늘어난 2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미국은 제조업 슈퍼사이클 초기에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조업까지 차지한다면
미국은 저렴한 노동력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제조업에 적합하지 않다. TSMC의 한 임원은 미국의 반도체 생산 비용이 대만보다 네 배 더 비싸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세계 최대 시장, 투명한 법치주의, 최고 수준의 대학, 넓고 깊은 자본 시장 등 다른 장점으로 보완한다. 여기에 2조4000억달러의 인센티브를 더한 것이다.이런 미국의 제조업 리쇼어링은 다른 나라에 피해를 줄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조 바이든 대통령 스타일의 보호주의가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을 1~2%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조업 위주로 성장해온,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타격이 클 수 있다.
우리는 기업이 투자하기에 어떤 매력을 갖췄는지 냉철히 분석할 때다. 그리고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 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소집해 투자를 겁박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검찰과 국세청을 동원하는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