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원년 언제인가…이인호 "1948년" vs 이종찬 "1919년" 격돌

이인호 전 KBS 이사장 칼럼에 이종찬 광복회장 공개서한으로 반박
대한민국의 건국 원년이 언제인가를 놓고 이종찬(87) 광복회장과 KBS 이사장을 지낸 이인호(87) 서울대 명예교수 사이에 장외 공방이 벌어졌다.이종찬 회장이 일제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1919년을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하자, 이인호 명예교수는 "역사 왜곡"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 이인호 전 KBS 이사장 "1948년 8월 15일이 정부수립일"
시작은 이종찬 광복회장의 취임사였다.

이종찬 회장은 지난달 22일 취임식에서 "광복회는 전 민족이 바라는 국가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고 역설했다.그러면서 "바로 그 독립정신으로 대한민국은 원조받던 국가 중 유일하게 원조하는 국가로 성공했다"며 "이 사실을 우리는 당당하게 자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19년이 건국 원년이 되면 2023년인 올해는 '대한민국 105년'이 된다.

이에 이인호 명예교수는 지난달 30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이종찬 광복회장에게…1919년 건국설 거두시라' 제하 칼럼에서 "이종찬 회장의 취임식에 뒤따른 기사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회장님과 기자들의 역사의식은 크게 잘못돼 있었다"고 주장했다.그는 "1948년 8월 15일이 아니라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 출범이 우리 대한민국의 수립이었다는 주장은 분명한 역사 왜곡"이라며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임시정부이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능을 내외로 인정받는 정식 국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1919년 건국설은 문재인같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주장하는 맹목적 통일지상주의자들 일부가 민족지상주의를 내세워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국민 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내놓은 주장임을 모르느냐"며 "1919년 건국설은 반(反)대한민국 세력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충분한 소지가 있다"고 썼다.
◇ 이종찬 광복회장 "이승만 대통령도 대한민국 원년 1919년이라 해"
이종찬 광복회장은 즉각 반발했다.그는 3일 광복회 홈페이지에 올린 공개 회신에서 "당치도 않는 요청을 다시는 나 말고도 누구에게도 하지 마시라"며 "나는 '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이라 했지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그는 "1919년 고종이 승하할 때까지 나라를 찾는다는 것은 왕정복고적이었다"며 "그러나 1919년 이후 국민의 마음은 확연하게 민주공화정으로 바뀌었다.

대한제국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국민적 동의로 존재하게 됐다"며 임시정부의 가치를 부각했다.

이어 이승만 전 대통령이 초대 국회의장으로 국회 개원식에서 한 개회사에서 '이 국회에서 건립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의 임시정부의 계승(繼承)에서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復活日)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여 민국년호(民國年號)는 기미년에서 기산(起算)할 것이요'라고 한 대목을 소환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내가 '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이라 말한 것은 내 말이 아니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말을 반복한 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인호 명예교수가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에 참여한 것을 거론하며 "이승만기념관 건립위원으로 나서신 선생께서 이승만 대통령의 말씀을 거부하고 딴말로서 그분을 덧칠한다면 이거야말로 위험천만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북한은 1948년 건국했다고 한다"며 "구태여 북한과 동격으로 (1948년을) 건국으로 가자는 주장은 이단과 겨루자는 것에 불과하므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과거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1948년 건국절 지정을 추진했으며, 진보진영에서는 대한민국이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의 적통을 사실상 이어받았다는 주장으로 맞받았다.일각에서는 1936년생으로 동갑인 두 원로 간 역사 논쟁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건국절 논란'이 재점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