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의사' 연세대 김기준 교수, 산문집 <나를 깨워줘>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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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마취 의사 경험을 시와 에세이로 표현김기준 연세대 의과대 마취학과 교수가 산문집 <나를 깨워줘>를 펴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근무 경험을 중심으로 가족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시와 에세이로 옮겼다. 글은 담담하면서도 따뜻하다. 김 교수는 독자들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사실을 전할 뿐이다. “백혈병 아이들은 주로 골수검사 또는 새끼손가락 굵기의 중심정맥도관을 삽입하러 수술실로 들어옵니다. 독한 항암제와 오랜 병상 생활로 인해 얼굴이 많이 상해 있죠. 막연한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나의 눈을 피합니다. 우는 것도 지쳤는지, 눈물도 잘 보이지 않죠."
"뇌성마비 아이들은 경직된 근육에 보톡스 주사를 맞으러 수술실로 옵니다. 온몸이 뒤틀려 있어요. 뇌성마비 아이들을 치료하는 작업치료사인 아내로부터 이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볼 때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꾸미지 않은 사실들이 큰 울림을 이끌어낸다. 김 교수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실들 가운데 이런 내용들을 기억해뒀다 글로 표현했다. 김 교수가 세상을 보는 시선의 온도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책은 김 교수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더해 사실감을 높였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의> 등 두 권의 시집을 냈다. 2016년 월간 시see 제7회 추천시인상, 2018년 ‘월간시 올해의 시인상’을 받았다. 이번에 낸 산문집 <나를 깨워줘>에도 40여편의 시가 담겨 있다. 시 또한 에세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내 영혼의 비누 두장’이라는 글에서 환자에게 받은 선물을 시로 담았다. 통곡하듯 울었다는 선물이다.
“산고의 순간은 이토록 무섭고 외로운데/ 난 그저 초록빛 수술복에 갇힌 마취 의사일 뿐일까? (중략) 몇 달 후 찾아와서 부끄러운 듯 내어놓은/ 황톳빛 비누 두 장/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기 먹다 남은 초유로 만든 비누예요 (후략)”
책이름 <나를 깨워줘>는 환자가 제대로 깨어나도록 해줘야하는 마취 의사의 사명이 담겨 있다. 김 교수는 4번째 에피소드(나를 깨워주세요)에서 마취 의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마취 관련 합병증 ‘악성고열증’을 다뤘다. 6만~20만명 중 1명 정도 나타나는 병인데, 수술 중에 체온이 급격히 올라가 저산소증 등을 유발한다. 수술실을 순식간에 전쟁터로 만드는 병이다.
책은 악성고열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의료 지식도 꼼꼼하게 담고 있다. 큰 수술을 앞둔 환자 가족들이 읽어볼만 하다. 박종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