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여성정치발전비 운용 '부실'…인건비에 쓰거나 집행 저조

"선관위도 방임…교육·여성정치인 네트워크 사업에 쓰여야"
정당의 국고보조금 가운데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등을 위해 사용하도록 책정된 여성정치발전비를 주요 정당들이 부실하게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은 대부분을 여성 당직자 인건비에 지출하고 있었으며, 더불어민주당의 비용 집행률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정의당은 성소수자 권익 사업에 여성정치발전비를 쓰기도 했다.

4일 '여성연구'에 실린 '정당의 여성정치발전비 운용 실태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연구진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민의힘·민주당·정의당의 2016∼2021년 회계감사보고서상 여성정치발전비 집행 현황을 분석했다. 각 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 중 경상보조금의 10%에 해당하는 비용이 여성정치발전비로 책정돼있는데 '여성정치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 외에 구체적인 용도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총선이 치러진 2020년을 기준으로 보면 여성정치발전비 평균은 국민의힘 13억원 내외, 민주당 약 14억원, 정의당 약 3억원 내외의 규모다.

이 기간 정당의 경상보조금 대비 여성정치발전비 집행 비율을 보면 국민의힘은 2018년(9.5%)과 2019년(9.7%)을 제외하고 모두 10%를 넘겼고,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11.0%에서 2021년 6.5%까지 하락세를 보였으며, 정의당은 분석 기간 내내 10%를 넘겼다.
다만 여성정치발전비 집행률이 높다고 해서 이를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라는 취지와 목적에 맞게 적절히 사용한 건 아니다.

국민의힘은 경상보조금 내 여성정치발전비 지출의 최소 98.63%, 최대 99.98%에 이르는 비용을 여성 당직자 인건비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교육이나 정책개발, 여성 관련 사업지원 등 다른 항목에 대한 지출은 없거나, 매우 낮은 비율에 머물렀다. 이는 비용 책정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연구진은 평가했다.

민주당의 여성정치발전비 중 인건비의 비중은 2016년 46.24%에서 2018년 69.50%까지 올랐다가 2019년 39.02%, 2020년 22.17%로 급격히 줄었고, 다시 2021년 24%로 소폭 상승했다.

교육비는 2016년 불과 3.40%였다가 2017년과 2018년 10%대를 기록했고, 2019년에 28.73%로 급격히 높아진 이후로 20%대를 유지했다.

2019년 교육비 비율이 급증한 이유로는 기존에 없던 두 번의 해외정치 연수와 여성당원 교육 및 워크숍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정책개발비는 2016년 24.36%에서 2018년 0.61%까지 하락했으나, 2019년과 2021년에 20%대를 나타냈다.

2019년의 경우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젠더 인식 조사, 여성예비후보 국회의원 선거구 정치지형 조사를 수행했고, 2021년에는 제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를 대비한 여성정책 연구용역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민주당의 여성정치발전비 집행에서 인건비 비율이 줄고 다른 항목의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는 전반적으로 본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자금이 집행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정의당도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지출항목 비율 중 인건비가 매년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총선이나 지방선거가 없는 해에는 84% 이상의 높은 인건비 비율을 나타냈다.

정책개발비는 2018년과 2021년 6% 안팎까지 올라왔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조직운영비는 3% 미만에 머물렀는데, '단체교류 및 후원'에 해당하는 내역에는 성소수자위원회 무지개분납금, 퀴어문화축제 참가, 성소수자 차별 반대 사업 등도 있었다.

연구진은 성소수자 위원회가 별도로 있음에도 관련 사업 비용을 여성정치발전비에서 지출하고 있는 현황을 여성정치발전비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연구진은 국고보조금인 여성정치발전비를 감사하는 선관위가 정당에 대한 일관된 제재 규정이나 조치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여성정치발전비에서 지출하는 인건비가 정당마다 다르고 그 격차도 심한데 정당 자율에만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여성정치발전비는 일회성 행사에 스치는 지역공모사업 대신 상시적 교육이나 여성 정치인 네트워크 사업에 투입해 여성의 목소리를 키우는 데 쓰여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현재 한국의 여성의원 비율은 19%로, 유엔여성기구(UN Women)와 국제의회연맹(IPU)이 발표한 '2021 여성 정치(Women in Politics)에 의하면 한국은 전체 190개 조사 국가 중 121위로 중하위권에 머문다. 최근 치른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도 광역의회의 여성 당선율이 19.84%로 여전히 낮고, 기초의회는 33.41%로 그나마 다른 선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 당선율을 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