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 마지막 佛 생존용사 하늘나라 전우들 품으로

코만도 특수부대원 고티에, 100세 일기로 별세
말년 노르망디로 돌아가 평화운동…마크롱 "잊지 않을 것" 추모
2차 세계대전 판도를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던 프랑스 참전용사 중 마지막 생존자인 레옹 고티에가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영국 BBC 방송과 일간 가디언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서 고티에와 그의 전우들을 가리켜 "해방의 영웅들"이라며 "우리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에서 태어난 고티에는 1차 세계대전의 아픔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이 발발한 직후 프랑스 해군에 입대했으며, 1940년 독일군이 프랑스로 밀려 들어오기 전에 영국으로 탈출했다. 콩고, 시리아, 레바논 등지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고티에는 나치 독일에 맞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항전을 이끈 샤를 드골 장군이 망명지 영국에서 구성한 '자유프랑스군'의 해군 특수부대, 일명 '코만도 키페'의 소총수 부대로 배속됐다.

당시 미국과 영국이 주축이 된 연합군은 유럽 서부전선의 전황을 뒤집고자 독일에 점령된 프랑스의 수도 파리까지 진격하는 '오버로드 작전'을 계획한다.

그 첫 단추로 1944년 6월 6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에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키는 '해왕성 작전'을 감행한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스코틀랜드 고지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고티에도 상륙작전에 투입됐다.

4일치 식량과 탄약으로 30㎏에 이르는 군장을 메고서는 해변으로 올라섰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4시간이 지나 첫 목표인 벙커 하나를 점령했고, 이후 78일간 처절한 싸움이 이어졌다.

당시 그와 함께한 프랑스 코만도 부대원 177명 중 전사와 부상을 피한 이가 20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고티에는 전후 언론 인터뷰에서 "고향에 돌아와 행복했고, 감개무량했다"며 "영국인들은 '당신들 프랑스인이 앞장서라'라고 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고티에는 전쟁 중 기차에서 뛰어나리다 왼쪽 발목을 다쳤고, 완치되지 않아 평생 불구로 살아야 했다.

상륙 '디데이' 이후 오버로드 작전은 11개월간 계속됐고, 나치 독일의 패망과 유럽 해방으로 이어졌다.

종전까지 살아남은 고티에는 말년에 노르망디로 돌아와 항구 마을에 정착, 평화 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2019년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아마 내가 젊은이를 한 명 죽였던 것 같다"며 "그의 아이들은 고아가 됐을 것이고, 부인은 과부가 됐을 것이고, 어머니는 울었을 것"이라고 전쟁 당시를 돌이켰다. 그러면서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