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적 인간과 요정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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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손태선의 그림과 발레 사이
햇수를 세는 기준은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뉜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간혹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전과 빈센트후로 나눌 수도 있겠다. 예술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낭만주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낭만주의 이전과 이후를 살펴 보기에 앞서 기준이 되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낭만주의(Romanticism)에 대해 알아보자.낭만주의는 상상력에 호소하고, 비현실적·환상적·감정적·그로테스크하고, 절대적인 것에 반대한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보이는 세계는 물론, 보이지 않는 세계와도 끊임없이 교감하려 했다.
낭만주의 발레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라실피드’이다. 초자연의 창조물인 요정과 인간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주제로 한다. 누군가에게 요정이라고 불리워 본 적이 있는가? 실피드(Sylphide)는 공기의 요정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발끝을 완전히 세워 춤추는 포인트(Pointe, 뿌앙뜨)기법의 첫 작품이었다.
1839년 스코틀랜드의 시골집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남자 주인공인 제임스는 에피라는 여자와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깜빡 잠이 든 제임스는 날개 달린 요정 실피드를 보게 된다. 넋을 잃고 바라보다 약혼녀 에피가 들어오자 실피드는 놀라 사라진다.이후 제임스는 실피드를 찾아 헤메다 숲에서 만나 함께 춤을 추며 사랑에 빠진다. 이 장면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달빛 아래에서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해 분위기를 완벽하게 만든다. 제임스는 발끝으로 서서 날아다니는 실피드의 매력에 빠져 약혼자 에피를 버린다.그는 실피드를 계속 보고 싶어 붙잡으려 했지만, 공기처럼 떠다니는 실피드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녀가 나타난다.(결정적 장면에서는 늘 마녀가 나타난다) 마녀는 제임스에게 그녀를 붙잡고 싶다면 마법의 스카프를 어깨에 씌우라고 한다.(만일 좋은 일이라고 들었다는 이유로 나쁜 일을 저지른다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일가?) 제임스는 실피드를 다시 만나 춤을 추었고, 그는 그녀의 어깨에 스카프를 걸쳐 준다. 하지만 그 스카프에는 독이 묻어 있었고, 실피드는 두 날개를 잃고 천천히 죽어간다. 그녀의 동료 실피드 요정들이 나타나 그녀를 데리고 하늘로 사라진다. 마을에서는 약혼자 에피가 다른 구애자와 결혼을 하게 되고,실망한 제임스의 모습과 함께 막이 내려진다.우리가 쉽게 상처 입히는 사람은 주로 사랑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사랑은 갈망하는 대상을 소유해야 끝이 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었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텐데…. 잠깐씩 떨어져도 결국엔 함께할 것이니까.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동작과 포즈로 선을 강조한 라실피드는 낭만발레의 핵심인 우아함과 가벼움,그리고 점프 테크닉을 통한 요정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낭만주의로 돌아가 몽환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고, 될 수 있으면 낭만주의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