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추구하지 않으며 낯선 감각을 선사한 30년차 시인

최근 산문집 발간
“시집을 낼 때마다 더 쓸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남김없이 털어낸 듯해도 다음 시집이 이어진다. 다음 시집을 내는 것은 지금의 내가 아니라 다음 시인일 것이다. 나는 계속 다음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이수명 시인은 최근 난다 출판사의 산문집 시리즈 ‘詩란’ 첫번째 책인 <내가 없는 쓰기>에 이렇게 적었다. 등단 30년차 시인이자 평론가, 번역가인 그는 여전히 자신의 새로운 목소리를 찾는 중이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수명 시인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시인은 아니지만, "(나는 시를 쓸 때) 무엇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그의 태도는 독자에게 매번 낯선 이미지와 감각을 선사한다.

시집으로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마치> <물류창고> 등이 있다. <횡단> <표면의 시학> 등 시론집을 통해 자신만의 시 세계, 시 쓰는 행위의 의미를 탐구해왔다. 박인환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상시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황인찬 등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시인들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비가 내리는 날 떠오르는 시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하고 시작되는 시는 우산 하나를 나눠쓴 채 젖은 거리를 조심스레 건너가는 ‘나’와 ‘너’의 거리를 가늠하게 만든다. 그 거리는 언어와 세계의 사이만큼 친밀하고도 아득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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