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기업·中企 상생, 규모만의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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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사무총장대·중소기업 상생은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정책 목표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면 중소기업 편이 아니라는 지탄을 받기 쉽다. 그러나 과잉 정치화와 고정관념을 내려놓으면 다음 한계가 보인다.
첫째, 상생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문제로만 인식하다 보니 대기업과 1차 협력사 관계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할 주체도 대기업으로 한정된다. 그런데 1차 협력사는 중소기업이라도 규모가 큰 경우가 많고 나름 문제 해결 역량이 있다. 하지만 2, 3차 단계로 내려갈수록 기술 침해, 표준계약서 미사용 등 불공정행위가 많고 상생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하도급법 위반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이고, 중소기업 간 기술 탈취 사례가 대기업 관계보다 더 많다. 협력사를 위한 상생기금 조성액은 2조2693억원(2022년 누계)인데 중소기업 출연은 0.4%에 그친다. 납품단가연동제도 2차 이하 확산이 더 어렵다. 협력사와 공정거래 협약을 체결하고 이행평가를 받은 기업의 0.5%만 중소기업이다. 동반성장지수 평가도 220여 개 대기업만 대상이다. 대·중소기업 경계면의 이분법적 관점 때문에 계속되는 문제들이다.둘째, 우월적 지위 원인은 기업 규모 차이 외에도 다양하나 이를 간과하기 쉽다. 투자받으려는 스타트업에 우월한 주체인 벤처캐피털도 기술 보호에 주의해야 한다. 대체 가능한 공급자에 대한 수요자 우위는 기업 규모와 무관하다. 매출이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뭉치는 기존 업계는 혁신기업이 상대하기 어려운 우월한 주체다. 철강 등 대부분 소재는 대기업이 공급자다. 수요=대기업, 공급=중소기업이라는 한정된 시각으로는 상생을 확산할 수 없다.
셋째, 플랫폼 경제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대기업 제품도 중소기업 플랫폼에서 팔릴 수 있다. 공정위의 플랫폼 공정화법안은 매출 100억원 이상, 입점기업 매출 1000억원 이상을 규제 대상으로 한다. 자사 제품 우대나 끼워 팔기는 대기업이라서가 아니라 플랫폼이 시장운영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중소기업보다 더 약자인 대리기사, 배달원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현행법상 상생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과 큰 중소기업을 포함해 모든 우월한 주체들은 상대적 약자와의 관계에서 상생 노력을 해야 한다. ‘경제적 우열관계 상생’으로 전환해야 사회 전반에 확산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의 전면 개정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