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 약값내는 중증희귀환자…보험 기다리다 희망 불씨 꺼진다"

"항암신약, 건강보험 적용까지 평균 1~3년…허가시간 단축 등 보장성 강화해야"
"저보다 아내가 하루 먼저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없으면 아내를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아내가 폐암(4기)으로 투병 중인 임성춘씨는 5일 오후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개최한 '중증·희귀질환자 중심 건강보험재정 개편 방안' 심포지엄에 발표자로 나와 이같이 말했다.

임씨의 아내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후 3년째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다.

암 진단 당시만 해도 의사조차 포기했던 상황이었지만, 다국적 제약사가 내놓은 3세대 표적항암치료제 '타그리소'를 복용한 후 9개뭘만에 주치의로부터 암세포가 흔적만 남았다는 소견을 받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또 하나의 고통이 시작됐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4주 처방에만 약값으로 600만원이나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타그리소는 다른 치료 시도 후 2차 이상의 치료제로 쓰일 때만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약물로 허가받았다. 따라서 만약 이 약을 첫 치료제로 쓰면 연간 7천만원가량이 드는 치료비를 고스란히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임씨는 "첫 1년은 친척 등의 도움으로 약값을 마련했지만, 두 번째 해부터는 은행에서 대출받아 약값을 충당했다"면서 "정부가 왜 검증된 항암제에 대한 급여화를 거부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동안 항암 치료제의 급여화를 위해 국회의원과 면담하고,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나가 보건복지부 장관도 만났다고 했다. 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암 투병 가족의 사정을 호소하고, 제약사 대표와도 급여화를 두고 상담했다.

신문고도 두드렸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임씨는 "자기가 평가위원장으로 있는 한 외산 약을 절대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말하는 의사와 국산 신약의 성장을 기다리면서 손 놓고 있는 한심한 정부 정책을 보면서 급여화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임씨에게는 최근 다시 희망이 생겼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3월 암질환심의위원회를 열어 타그리소에 대한 1차 치료 급여기준을 설정한 덕분이다.

고가의 항암제 부담에 고통받는 건 비단 임씨 가족뿐만이 아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신장암과 유방암 등에서도 임씨와 비슷한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난치성 암으로 투병하는 환자들이 신약의 급여화를 기다리는 사이에 장기 생존 여부가 갈리는 만큼 정부가 나서 항암신약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희경 가천대길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거액의 약값을 부담해야 하는 중증희귀질환 환자들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허가사항을 초과하는 약제에 대한 치료 접근성을 강화하고, 1∼3년이 걸리는 허가까지의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면서 "급속하게 변화하는 치료제 환경변화를 허가와 급여에 유연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또 "95% 급여 적용이 어렵더라도 대안이 없는 환자들에게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이 과정에서 항암신약을 통해 얻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사회복귀, 완치 가능성 등에 대한 가중치가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곽명섭 김앤장 변호사(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는 정부 차원에서 중증필수의료심의회의를 구성해 중증희귀질환자와 같은 의료 약자의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한 의료안전망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곽 변호사는 "안전망 기금을 통해 재난적의료비, 희귀질환 보장, 고가 혁신의료 지원 및 감염병 대응 등에 활용할 수 있다"면서 "기금의 재원은 건강보험 출연금 및 국고지원금, 제약사의 건강보험 분담금, 공익적 과징금, 건강보험의 본인부담 상환제 환급금 중 일부가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