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못해 생산성 '뚝'…사장님이 대신 외국어 공부

기로에 선 외국인 고용정책
(3·끝) 기대 못미치는 생산성

中企 대표 "업무도 바쁜데
외국어까지 배우려니 기막혀"
매일 한국어 강좌 진행하기도

"한국어 시험 수준 더 높여야"
일부 국가선 '정답 족보' 돌아
지난달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경기 안성에 있는 한 연수원에서 한국의 문화, 관련 법규 등 취업 교육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경기 서부의 한 제지업체 대표는 요즘 바쁜 시간을 쪼개 유튜브로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다. 그는 “베트남 노동자들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돼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보니 의사소통에 애를 먹고 있다”며 “업무도 바쁜데 성조가 여섯 개나 되는 베트남어를 배우려니 기가 막힐 지경”이라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체류 중인 약 30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중소기업의 인력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한국어 의사소통이 서툴러 생산성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다.시흥시에서 발전설비를 제조하는 비와이인더스트리는 미얀마와 네팔 출신 근로자를 채용한 뒤 회삿돈을 들여 매일 오전 1시간씩 한국어 강좌를 열고 있다. 이 회사 김윤정 과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처음 오면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어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한국어 능력이 생산성과 직결되는 만큼 한국어 시험의 변별력과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고용허가제를 통해 E9 비자를 발급받아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는 의무적으로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진행하는 한국어 시험(EPS-TOPIK)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이 현장에 투입됐을 때 한국어 구사 능력은 기대 이하라는 반응이 많다. 상당수 국가에선 한국어 시험의 정답이 적힌 ‘족보’까지 돌아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한 근로자는 “출제 패턴이 반복적이어서 응시생들은 브로커를 통해 족보를 구매한 뒤 손쉽게 시험에 통과하는 편”이라고 말했다.한국 문화와의 이질감도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화성시에서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H사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근로자가 종교적인 이유로 근무 시간에 기도하거나 구내식당 음식을 가려 애를 먹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종교의 자유를 침범할 생각은 없지만 납기일이 임박할 때 생산성에 차질이 빚어지는 건 사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계는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임금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국인도 동일하게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있는 데다 숙식비를 제공하는 경우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국인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인건비는 평균 265만7000원 정도로 동일 조건의 내국인 근로자와 비교해 숙식비를 제외하면 평균 93.9% 수준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시행한 ‘외국인력 고용 관련 종합애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은 3개월 미만 고용 초기에 업무·연차 등 조건이 동일한 내국인 근로자의 53.8% 수준에 그친다. 이태희 대구한의대 진로취업처 특임교수(전 대구고용노동청장)는 “근로기준법에는 수습 근로자의 경우 임금액의 10%를 감액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에게 일정 기간 수습기간을 부여하면 최저임금법 위반 논란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임금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강경주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