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 간첩죄 적용' 野·법원 반대에 표류

입법 레이더

기술유출 사범 87%가 무죄·집유
'솜방망이 처벌' 비판 목소리 커져

간첩죄 대상 '적국→외국' 개정안
올해 두번 심사하고도 결론 못내

법원 "법체계 정비가 먼저"
지난해 1월 삼성전자 엔지니어 A씨(44)가 회사 기밀을 외부로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가 빼돌린 자료에는 삼성전자와 TSMC만 양산에 성공한 최첨단 3나노(nm·1nm는 10억분의 1m) 공정 기술이 포함돼 있었다. 검찰은 징역 5년에 벌금 1억원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지난 3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핵심 기술을 해외에 유출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치는 것을 막기 위해 간첩죄 개정을 담은 형법 개정안이 올해 초 발의됐지만, 법원과 일부 야당 의원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개정안은 간첩죄 대상에 ‘외국’을 추가해 기술유출 사범에게 간첩죄를 적용,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게 골자다.

○기술유출도 간첩죄로 처벌

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올 3월에 이어 지난달 28일 간첩죄 개정을 담은 형법 개정안 4건을 심사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주, 이상헌, 홍익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개정안은 간첩죄 대상에 ‘외국’ ‘외국 단체’를 추가하는 게 핵심이다. 현행법상 간첩죄는 대상이 ‘적국’으로 한정돼 있다.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 대상이다. 이 때문에 시대 변화를 현행법이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술유출 사범을 간첩죄로 처벌할 길이 열린다. 자연히 처벌 수위도 높아진다. 그간 기술유출 범죄는 ‘산업기술보호법’이 적용돼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대법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33건 중 87.8%가 무죄(60.6%), 집행유예(27.2%) 선고를 받았다. 징역형은 단 2건이었다.

원인은 낮은 양형기준이다. 재판부는 기술유출 사건의 경우 ‘지식재산권범죄 양형기준’의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적용하는데, 이에 따르면 기본 징역형은 1년~3년6개월이다. 가중 처벌해도 최장 징역 6년에 그친다. 미국은 국가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적발되면 ‘경제 스파이법’을 적용해 간첩죄 수준으로 처벌한다. 피해액에 따라 징역 30년형 이상도 가능하다.

○“과잉 처벌 우려”

하지만 법원이 법체계상 충돌과 과잉 처벌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개정안 추진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박영재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달 28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나와 “개정안이 5년 이상의 징역형인 데 반해 특별법인 군사기밀 보호법의 법정형은 이보다 가볍게 규정돼(1년6월 이상) 법체계상 검토가 필요하다”며 “(준적국이나 우방국 등) 상대방 성격과 관계없이 중한 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추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일부 민주당 의원도 우려를 나타냈다. 박용진 의원은 “국가 핵심기술을 지키는 데 간첩으로 규율한다고 끝나는 문제는 아니다”며 “단순하게 편의적으로 하면 오히려 더 많은 구멍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탄희 의원은 “개정 필요성은 동의한다”면서도 “군사기밀 보호법 등과 같이 심리해 체계를 다듬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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