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축구 그 다음은?…사우디, 스포츠에 '오일머니' 수십억 달러 쏟는다

FT "국부펀드 출자로 전문 투자사 설립 계획"
"PIF, 카타르 월드컵 이후로 스포츠 애정 커져"
"脫석유 일환…게임 투자도 '불도저'처럼 단행"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십억달러 규모의 스포츠 전문 투자 회사를 세울 계획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 보도했다. 축구, 골프 등에서 낸 성과를 테니스 등 다른 분야로 확장해 나가겠다는 포부다.

FT는 이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 2명을 인용해 “사우디 정부는 축구와 테니스를 비롯한 다른 스포츠 분야에서 추가 인수, 투자, 합작사 설립 등에 나설 의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투자사 설립에 필요한 자금은 6500억달러(약 847조원)를 굴리는 사우디국부펀드(PIF)에서 댈 전망이다.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셈이다.

PIF는 의장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지휘하에 철저한 중앙집권식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다. 석유 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산업을 다각화하는 ‘비전 2030’은 빈 살만 왕세자의 최대 프로젝트로 꼽힌다.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은 “관광, 투자 등 석유 너머 분야를 개척해 경제 구조를 재정비하겠다는 야심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PIF는 최근 몇 년 새 여러 스포츠 분야에 투자해 성과를 냈다. 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대항마로 꼽히는 LIV골프를 출범시켰고, 올해 6월 PGA투어와 LIV골프, DP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의 합병으로 탄생하게 될 새 법인의 지분을 상당 부분 확보하며 업계 큰손으로 떠올랐다. 같은 달 PIF는 자국 축구 구단 4개 팀의 지분 75%를 사들였다. PIF는 사우디 프로축구 리그를 세계 10위권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이어 카림 벤제마 등 유명 선수들이 줄줄이 사우디 구단으로 이적하며 PIF의 영향력이 입증됐다. 유럽 구단들이 소득 대비 지출 규모를 제한하는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준칙을 두고 있는 반면, 사우디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선수 영입에 무한으로 자금을 댈 수 있는 구조다. PIF는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인 뉴캐슬유나이티드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스포츠에 대한 PIF의 애정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PIF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FT에 “월드컵 이후부터 글로벌 스포츠에 투자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다”며 “카타르가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사우디 선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자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PIF가 출자할 새 투자사는 LIV골프나 뉴캐슬유나이티드 등 기존에 투자가 이뤄진 대상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100% 신사업 분야에서의 기회를 모색하는 데 역량이 집중될 것이란 설명이다.새 투자가 유력한 분야는 테니스가 꼽힌다.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의 안드레아 가우덴치 회장은 지난달 FT 인터뷰에서 “PIF와 잠재적 투자 가능성과 관련해 논의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최근 게임 업계에서도 공격적 투자에 나서 주목받은 바 있다. PIF 산하 새비게임즈그룹은 지난 4월 미국의 모바일용 게임 개발사인 스코플리를 50억달러(약 6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380억달러(약 49조원) 규모의 새비게임즈그룹은 작년 1월 출범 이후 각종 게임 및 e스포츠 회사 투자에 80억달러(약 10조원)가량을 쏟아부었다. 시장에선 신사업 분야에 대한 사우디의 투자 스타일이 “불도저와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