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새우깡과 '보이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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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민 산업부 차장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아이 손, 어른 손, 자꾸만 손이 가…. 최근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다 우연히 본 새우깡 광고 가사다. 어릴 적부터 귀에 익은 터라 절로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가수 지코가 새로 부른 이 광고 가사엔 새로운, 여러 손이 등장한다. 작은 손, 큰 손, 친구 손, 연인 손…. 그런데 광고 말미에 생각지도 못한 손이 튀어나왔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단순한 언어유희인지,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넣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지난 4월 공개된 이 광고 영상은 지금까지 조회수 2634만 회를 넘어서며 대박을 쳤다.
광범위해지는 시장 개입
난데없이 새우깡은 왜 ‘보이지 않는 손’을 외쳤을까.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원리를 새삼 각인시키고 싶었던 걸까. ‘보이는 손(규제·통제)’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드러낸 건 아닐까. 여하튼 광고가 나온 지 두 달여 만에 ‘보이는 손’은 움직였다. 밀 가격이 떨어졌으니 제품값을 내리라는 정부의 동시다발적 압박에 맞닥뜨린 것이다. 새우깡 제조사인 농심은 지난달 말 백기를 들고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작년 이맘때부터다. 정부와 정치권의 시장 개입은 광범위해지고 있다. 기름값부터 은행 금리, 통신요금 등을 사실상 통제하면서다. 올 들어선 라면과 과자 등 식료품 가격까지 개입하고 나섰다. 다음 타자는 빵과 우유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러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동네 중국집 짜장면과 김밥값까지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압박 수위다. 단순한 구두 개입이나 팔을 비트는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갑자기 국세청을 동원해 대형 입시 업체들과 1타 강사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나선 게 대표적 사례다. 시장에 기대 버티면 털겠다는 ‘시그널’을 보여줬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다. 13년 전 이명박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한 방식 그대로다.
가격 통제는 늘 실패한다
물론 물가를 잡아야 하는 정부의 다급함과 선의(善意)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한편으론 속이 다 시원한 면도 있다. 기자의 아들내미가 좋아하는 새우깡값이 떨어진 건 내심 반가운 일이다. 매달 100만원 넘는 돈을 챙겨간 학원들이 납작 엎드린 모습을 보니 속으론 통쾌하기도 하다. 그런데 잠시 기분이 좋으면 괜찮은 걸까. 그렇지 않다.‘보이는 손’은 단기적, 상징적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늘 실패로 끝났다. 되레 부작용만 키운 경우가 많다. 그동안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세계 각국에 수백 년간 새겨진 역사가 그렇다. 한국만 봐도 최신 사례가 차고 넘친다. 전기료 인상 억제, 등록금 동결, 임대료 통제 등이 한국전력 부실화, 사립대 적자, 부동산 시장 불안 등으로 귀결된 건 다 아는 사실이다.관료나 정치인이 시장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오만한 착각’에 불과하다. 시장을 왜곡하고 경쟁과 혁신을 짓누를 뿐이다. 좋은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마침 휴가철이다. 새우깡이 소환한 애덤 스미스 관련 책을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