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유럽이 미국산 LNG 싹쓸이 하는 게…신흥국에 호재?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입력
수정
미국산 LNG 장기계약 선호하는 유럽
美기업들, 유럽자본 챙겨 개발 프로젝트 '순항'
실제 미국산 LNG 수출물량 늘어나려면 "한참 멀어"
이 와중에 中은 "전 세계 가스 물량 빨아들이는 중"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이 호황기를 맞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럽연합(EU)과 중국 등 주요 경제국들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앞다퉈 미국산 LNG 장기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에너지 기업들의 곳간에는 설비 투자를 위한 종잣돈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LNG 구매 시장의 큰손'으로 올라선 중국이나 유럽에 비해 자금력이 모자란 신흥국·개발도상국은 '가스 대란'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에서 이제 막 가동을 시작한 각종 LNG 투자 프로젝트가 실제 수출용량 확대로 이어지기까지는 최소 5년이상 걸린다는 점에서다.
장기인듯 장기아닌 계약서비스에 美LNG 인기 폭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몇 주 사이 미국 에너지 기업과 유럽 및 중국의 LNG 장기계약 체결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미국 셰니어에너지는 노르웨이 에퀴노르와 15년 공급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중국 ENN과도 20년 이상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벤처글로벌LNG는 독일 EnBW에 이어 독일 국영 에너지 기업 SEFE와도 20년 장기계약을 확보하는 데 성공해 독일 LNG 시장 점유율 1위 수출업체로 등극했다.그간 전통적인 LNG 수입국은 한·일·중 등 동북아 국가들이었다. 유럽이 LNG 확보전에 가세한 건 지난해부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그간 육상 가스관을 통해 수입하던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대안으로 LNG 수입을 늘린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럽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LNG 수입처는 미국이다.
통상 유럽 기업은 녹색 전환과 탈탄소화 흐름 때문에 가스 시장에 오래 묶여 있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미국 수출업체들은 이들의 입맛에 맞춰 화물 변경이 가능한 옵션 등을 붙여 일종의 '무늬만 장기계약'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FT는 "최근 유럽의 'LNG 구애'는 불과 몇 년 전 프랑스 정부가 자국 에너지기업 Engie와 미국 LNG 시설업체 넥스트데케이드 간의 70억달러짜리 거래를 환경오염을 이유로 무산시켰던 것에서 극명하게 바뀐 추세"라고 전했다.S&P 글로벌 커머디티 인사이트 자료에 의하면 유럽과 중국이 2021년부터 2023년 6월말까지 합의된 미국산 LNG 공급 계약의 40%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중에서도 미·중 간 계약은 2021~2022년에 24.4%에 이른 반면, 올해 들어서는 현재까지 유럽이 중국보다 미국산 LNG 물량을 더 많이 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자본으로 개발 나선다지만…"가스 시장 안정화는 먼얘기"
장기계약은 LNG 개발 프로젝트에 드는 막대한 자금 조달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미국 가스업체들에는 호재다. S&P 글로벌 커머디티 인사이트의 마이클 스토파드 가스 전략 책임자는 "유럽 구매자들의 가세는 미국 LNG 프로젝트가 결승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추가적인 순풍을 불어넣고 있다"며 "미국 업체들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다각화된 구매자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면 향후 개발 위험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에너지정보업체 라이스타드에너지의 신드레 크누손 가스 연구 파트너는 "새로 맺은 거래들로 인해 더 많은 LNG 수출 프로젝트가 개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서양을 건너 온 유럽 자본은 미국 업체들이 LNG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데 든든한 보험이 되고 있다. 독일 기업과 잇단 장기계약 체결에 성공한 미국 벤처글로벌LNG는 올해 말부터 루이지애나주 해변에 LNG 수출 기지를 착공할 예정이다. 프랑스 토탈에너지는 미국 넥스트데케이드가 텍사스주에서 개발 중인 LNG 터미널의 지분 2억1900만달러어치를 직접 사들이기도 했다.일각에서는 미국산 LNG 개발 호황 국면으로 인해 저개발국도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FT는 "신규 프로젝트들로 미국산 LNG 공급량이 많아지면 신흥국에도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도 "실제 LNG 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때까지는 최소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은 이미 지난해 한 차례 '유럽발 LNG 대란'을 겪은 바 있다. 구매력이 있는 유럽 국가들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자 유럽으로 발길을 돌리는 LNG 선박들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유럽발 신규 수요가 더해진 탓에 LNG 가격 지표인 JKM 선물 가격은 작년에 3배 이상 급등한 바 있다.
'에너지 안보'에 진심인 中, 전 세계 LNG 장기물량 33% 빨아들여
중국은 유럽에 질세라 전 세계를 무대로 공격적으로 LNG 수입을 늘리고 있다. 이달 초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중국은 올 들어 현재까지 세계 전체 LNG 장기 도입 물량의 33%를 사들인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달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는 카타르와 27년 LNG 장기계약을 체결했다.중국의 LNG 수입 추이는 2015년에는 1790만t으로 일본(8660만t)의 약 5분의1 수준이었으나, 2021년에는 중국이 7840만t으로 일본(7440만t)을 추월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도 LNG 수입량에서 중국이 일본을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2033년이 되면 중국은 1억3890만t을 수입해 일본(6130만t)의 2배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중국은 지난해 개전 이후 서방의 러시아 제재를 틈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할인된 가격에 대거 사들이기도 했다. 올해 초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지난해 '시베리아의힘' 가스관을 통한 중국향(向) 가스 수출량이 155억㎥를 기록해 전년에 비해 49%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은 현재 에너지 공급 과잉 상태에 직면했는데도 안보 차원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비축해두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