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와 베를린필 첼로의 진가를 보여준 무대 [리뷰]
입력
수정
6일 롯데콘서트홀서 공연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와 조수미의 앙상블
조수미, 객석서 울린 휴대폰 소리 따라불러
청중 웃음 유발, 연주자 불쾌감 덜어줘
지난 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와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소속 첼리스트 12명이 한 무대에 섰다. 크레디아 제공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소속 첼리스트만으로 구성된 ‘베를린 필하모닉 12 첼리스트’(이하 12 첼리스트) 공연이 지난 6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아시아 투어를 시작한 이들은 현재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국내 투어를 돌고 있으며, 이날 공연은 이 투어 일정의 반환점에 해당한다.
이들의 공연은 두 곡씩 묶어 기악만으로, 즉 12 첼리스트만으로 연주하는 부분과 성악이 등장하는 부분이 교대로 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율리우스 클렌겔의 ‘12대의 첼로를 위한 찬가’는 12 첼리스트가 결성되는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이들은 첫 곡부터 자신들이 누구이며 어디 소속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처럼 부드럽고 조화로운 음색과 고도로 통합된 앙상블을 들려줄 수 있는 악단이 얼마나 되겠는가.진취적인 선곡 역시 마음에 들었다. 전체 14곡 가운데 20세기 이전 작품은 하나도 없었지만(‘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있기는 했지만, 프로그램 해설에서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이 곡은 실제로는 알비노니의 작품이 아니다), 동시에 일반 청중 입장에서 거북하거나 난해할만한 곡도 없었다. 이들은 심지어 재즈(듀크 엘링턴과 후안 타이졸의 ‘카라반’, 조지 시어링의 ‘버드랜드의 자장가’)나 피아졸라의 탱고까지도 맛깔나게 소화해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소속 첼리스트. 크레디아 제공
특히 피아졸라의 탱고는 세 곡이나 들어가서 단일 작곡가로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12 첼리스트는 ‘리베르탱고’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같은 만년 인기 레퍼토리가 아니라 ‘레비라도’, ‘현실의 3분’ 등 평소에 접하는 일이 드문 곡을 연주함으로써 자신들의 진취성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기교와 손동작, 추임새(!)가 어우러진 빌헬름 카이저-린데만의 ‘12인의 보사노바’ 연주가 이날 공연의 정점이 아니었나 싶다.
이들과 함께한 소프라노 조수미는 이제 데뷔한 지 40년이 되어가는 베테랑 성악가다. 워낙 오랜 경력을 지닌데다 빡빡한 투어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라 컨디션이 좋을지 걱정했으나, 이는 곧 기우임이 드러났다. 첫 곡인 빌라-로부스의 ‘브라질 풍의 바흐 제5번’ 중 ‘아리아(칸틸레나)’부터 본 공연 중 마지막으로 노래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러브 네버 다이즈’까지, 오직 조수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관록이 청중을 압도했다.레오 들리브의 ‘카디스의 처녀들’에서 보여준 자신만만하고 화려한 동작이나, ‘러브 네버 다이즈’를 끝맺는 아찔한 고음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토마소 알비노니/레모 지아조토의 ‘아다지오 사단조’ 직전에 울린 휴대폰 소리를 따라부른 것은, 청중의 웃음을 유발했을뿐더러 혹시라도 12 첼리스트 연주자들이 느꼈을 불쾌감을 덜어주는 데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엄격한 자기관리는 물론이거니와 청중뿐만 아니라 동료 연주자도 배려하고 소통하는 이런 태도가 오늘날까지 그녀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크레디아 제공
‘코로나 셧다운’을 벗어난 지금은 내 생각으로는 공연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훌륭한 음향 조건을 갖춘 콘서트홀이 각지에서 개관하고 있으며, 뛰어난 기량을 갖춘 국내외 음악가들이 활발하게 공연을 열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청중의 태도는 이와 반비례하여 나날이 악화하고 있는 것 같다. 앞서 거론한 휴대폰 외에도, 연주 중의 기침이나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는 근래 들어 점점 빈도가 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것은 공연 전에 휴대폰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소지품을 바닥에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들이다. 관객의 협력 없이 좋은 공연은 완성되지 않는다.
황진규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