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500일…출구없는 소모전에 국민 78%가 가족·친지 사상

최전선은 그대로 교착…러·우크라 '강대강 대치' 지속
우크라인 고통…먼 후방까지 수시로 러 드론·미사일
미 전쟁지원 피로감·러 불안한 내정이 '종전변수' 될 듯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는 9일(현지시간)로 500일이 되지만 여전히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현지시간으로 작년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보급선조차 확보하지 않은 채 무작정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진격하던 러시아군은 졸전 끝에 패퇴했고, 이들이 물러난 자리에선 민간인 수백명을 고문하고 강간, 살해한 흔적이 드러났다.

충격적 참상을 목도한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등을 돌렸다.서방은 이를 명분삼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대폭 확대했고, 우크라이나는 이에 힘입어 작년 가을 러시아가 자국 영토 편입을 선언한 하르키우와 헤르손 등을 잇따라 수복했다.

이후 장기간 교착돼 있던 전선에선 최근 우크라이나가 이른바 '대반격 작전'을 개시하면서 치열한 교전이 재개됐지만, 어느 쪽도 쉽게 우세를 점하지 못한 채 소모전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그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지난 겨울 전국 주요 도시의 에너지 기반시설을 무차별 폭격했고, 이달 6일에는 최후방 도시 르비우에 대규모 미사일 공습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얼굴을 다친 르비우 주민 한나 페도렌코는 AP 통신 인터뷰에서 "죽은 이들이 안타깝다.

그들은 너무 어렸다"면서 "이건 정말 끔찍하다.그들(러시아군)은 민간인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KIIS)는 지난달 우크라이나 국민의 78%가 이번 전쟁이 발발한 이후 가족이나 친지가 죽거나 다치는 경험을 했다는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러시아는 침공 이후 70만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자국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러시아는 보호 차원의 조처라고 말하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사실상 어린이를 납치해 인질로 삼은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2024년 차기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 공화당을 중심으로 무제한적인 군사원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상황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서방의 제재로 경제난이 갈수록 심해지는 데다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젊은 노동자 상당수가 병사로 징집돼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최근에는 자폭 드론(무인기) 편대가 모스크바를 공격하고 친우크라이나 민병대가 준동하는 등 본토에마저 전쟁의 불길이 옮겨붙는 모양새다.

심지어 지난달 24일에는 한때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혔던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휘하 용병들을 이끌고 무장반란을 일으키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망명하면서 반란은 36시간만에 마무리됐지만,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에 심각한 상처를 남기면서 러시아 국내에선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끝없는 소모전에 지친 서방이 군사원조에 전적으로 의존 중인 우크라이나에 종전을 압박하는 것이 먼저일지, 러시아 국내정세가 최소한의 체면조차 차리지 못한 채 백기를 들어야 할 정도로 악화하는 것이 먼저일지가 관건이 된 모양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민간 채널을 통해 협상에 나설 여건을 조성하려 준비 중인 모양새다.

NBC 방송은 6일 복수의 전현직 미 당국자를 인용, 올해 4월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을 비롯한 전직 안보분야 고위 당국자들이 뉴욕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비밀 회동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이 회동에선 우크라이나가 탈환하지 못한 러시아군 점령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외교적 출구가 무엇인지 등 민감한 현안이 논의됐다고 한다.최근 워싱턴포스트(WP)는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달 키이우를 비공개로 방문했을 당시 우크라이나측이 러시아 점령지를 탈환하고 연말까지 러시아와 평화 협상을 벌일 것이란 입장을 설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