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은 대체 어떻게 8시간이나 공연할 수 있나요?

[arte] 이자람의 소리
“덩 기덕 쿵 더러러러 쿵 기덕 쿵 덕”

이것은 굿거리 장단을 입으로 소리내는 입장단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굿거리 입장단 정도는 음악 교과서에서 혹은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봤을것이다. “땅 도 땅 도 내 땅이다 조선 땅 도 내 땅이다” 로 배우는 자진모리 장단도 아마 들어봤을 것이다. 굿거리 장단은 민요나 산조, 시나위에 사용되는 장단이며 자진모리는 농악이나 판소리, 산조와 시나위 등에 사용되는 장단이다.

한국의 전통 장단은 각 장르별로 그 종류들이 나뉘는데 한국 전통 음악은 크게 정악, 민속악, 굿, 농악, 판소리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각 장르마다 다른 종류의 장단 들을 사용한다.오늘 칼럼에서 하고픈 이야기는 판소리가 대체 어떻게 단 하나의 선율악기(소리꾼)와 단 하나의 리듬악기(고수의 북장단)만으로 길게는 8시간동안(동초제 춘향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면 8시간이다.)이나 공연이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낯선 장단의 이름들을 나열하며 이야기를 풀어갈 밖에 도리가 없다. 독자분들이여, 새로운 것을 알아가려면 조금의 생경함과 그로부터 느껴지는 지루함은 꼭 필요한 옵션이니 부디 조금의 인내심만 빌려달라.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조선시대부터 판소리에 사용 되어온 장단은 7개의 장단이다.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중모리 장단이 그것이다. (20세기 들어 진양 장단을 좀 더 빠르게 연주하는 세마치 장단이라거나 중모리 장단을 좀더 빠르게 연주하는 단중모리 등으로 세분화 하여 장단을 기록한 창본이 나타나며, 21세기 들어서서는 4/4 리듬부터 쌈바리듬 등 까지 현대의 타 장르 음악에서 쓰이는 리듬이 적극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창작판소리들이 등장한다.)

심청이 물에 빠지는 장면이나 적벽강에서 벌어지는 적벽대전, 별주부가 생전 처음 바다 밖 세상에 나와 마주하게되는 수많은 잡목이 늘어진 산세 풍경들을 무대에서 구현한다 생각해보라. 무대와 조명으로 넓고 광활한 바다와 배, 불타는 적벽강, 수목이 우거진 산등을 표현하고 그 위를 흐르는 음악으로는 아름답고 다채로운 선율악기들의 연주나 혹은 빰빰빰빰 하고 긴장감을 올려주는 오케스트라와 큰 북 소리들 등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가? 헌데 이 이상한 공연예술, 판소리에서는 소리꾼이 전달하는 말과 성음변화, 시김새(시김새에 대해서는 이전의 칼럼에서 간략히 설명한 바 있다)의 활용과 고수의 북장단으로 이를 표현한다. 심청이를 태운 배가 적막한 밤바다를 가로지는 장면은 느린 진양 장단으로, 긴박하게 여기저기서 불화살이 날아들고 군사들이 우수수수 죽어나갈때는 빠른 자진모리 장단으로, 별주부가 아름다운 산세를 처음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는 흥겨운 중중모리 장단으로 소리를 엮었다.

그리고 이 장단들 위에서 이야기를 표현함에 있어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낮고 넓은 소리부터 높고 강한 소리까지 다양하게 활용하여 각 장면들을 촘촘하게 그려나간다. 장단으로 장면의 성격을 구성하고 그 위에서 다양한 목소리 기술로 짜여진 소리를 낼 때 관객은 이를 통해 스스로 장면이나 인물을 상상하며 북장단의 속도와 울림에 따라 함께 숨도 못쉬도록 긴장을 하거나 어떠한 장엄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관객과 하나가 되어 어느새 관객을 데리고 바닷속도 들어갔다가 어두침침한 바다위에 머물렀다가 하는 것이 판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소리 공연은 더더욱 현장이 중요한 예술이다. 관객이 무대위의 사람들과 동일한 시공간에 함께 현존하며 소리꾼과 고수가 그려내는 한편의 수묵화 속에 함께 들어가 자신의 상상의 붓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하는 예술이다. 그렇게 관객은 각자의 한편의 수묵화를 쥐고 공연장을 돌아나서게 된다. 이것이 판소리만이 가진 힘이며 관객과 공연이 끈끈하게 만나게 하는 특별한 지점이다. 최근에 <이방인의 노래*> 라는 창작 판소리 작품을 무대에 나흘간 올렸다. 4회의 공연은 나흘간 매일 다른 관객을 만나 각 회마다 고유한 경험이 되어 기억에 자리잡았다. 매일을 채운 관객이 다르고, 그들이 뿜어낸 에너지가 다르고, 그로인해 나를 비롯한 무대위의 우리가 빚은 이야기도 매일매일 다른 에너지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느린 속도의 진양 장단 위에서 8층 계단을 힘겹게 걸어 올라오는 늙은 대통령을 안쓰러워했고, 자진모리 장단위에서 바삐 집안일을 하는 라사라를 응원했다. 어떤날은 관객들이 대통령에게 더욱 마음을 쓰기도 하고 어떤날은 라사라와 함께 화를 내고 어떤날은 등장인물 모두를 애틋해했다.
물론 이 창작 판소리에서는 북 이외에 기타가 함께하여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거나 제네바 카페 내부로 들어온 듯한 음향효과를 만들어주는 등의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작품 절반 이상은 기본적으로 전통 판소리 장단들을 활용하여 오로지 말, 성음, 시김새, 장단으로 장면을 만들어내고 관객들을 그 안으로 초대하였다. 그로인해 관객은 모두 각각의 생김새를 가진 등장인물들을 만났을 것이고, 각자의 상상력의 도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면서도 동일한 그림들을 가져갔을 것이다. 이 때문에 판소리를 사랑한다. 화방에 모인 모두가 각자 다른 수묵화를 그려 챙겨가듯, 판소리 공연에 온 이들은 소리꾼의 안내에 따라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되 각자의 인생과 경험들의 재료에 따라 다양한 자신만의 그림을 한폭 그려서 집에 돌아간다. 소리꾼은 그저, 그들의 상상력을 잠시 빌려 이야기를 한판 벌려주는 것 뿐이다. 좋은 안내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몸과 마음, 그리고 기술을 잘 닦아야겠다 생각하며 칼럼을 마무리한다.


*<이방인의 노래>는 2014년 초연된 저자의 4번째 창작 판소리이다. 저자는 이 공연의 작가, 작창가, 소리꾼으로 임했다. Gabriel José de la Concordia García Márquez의 <Bon Voyage Mr.president>라는 소설을 판소리로 만든 작품이며, 제네바에서 한 작은 나라의 전직 대통령과 라사라-오메로 부부가 우연히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