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갈륨과 게르마늄, 왜 모두 중국만 쳐다보나 [원자재 이슈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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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광물자원, 심해저와 달에서도 채굴한다지만
가공 산업이 관건...자본과 기술력도 중국이 월등
주요 선진국 기업들이 산업 원자재 갈륨과 게르마늄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가 다음달부터 수출을 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의 대(對)중국 수출을 제한한 데 대한 보복이다. 게르마늄은 고성능 컴퓨터 반도체, 광섬유 통신, 야간 투시경, 인공위성용 태양전지의 핵심 소재다. 갈륨은 반도체 등의 전송 속도와 효율을 높이기 위한 화합물 제조에 쓰이며, TV와 휴대전화 충전기, 태양광 패널, 레이더, 전기차에 많이 사용된다. 한국은 중국산 갈륨과 게르마늄을 전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작년에만 1억7120만달러 규모 게르마늄과 갈륨을 수입했다. 29도의 온도에서 액체로 변하는 갈륨은 알루미늄 정제 부산물이며, 게르마늄 역시 아연 제련소의 부산물로 생산되거나 석탄에서 추출한다. 비교적 흔한 금속이지만 희토류와 마찬가지로 중국 의존도가 높다.2010년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 통제를 하자 전 세계가 화들짝 놀라 희귀 광물자원 공급망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했지만, 아직도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의문이다. 중국의 인권·환경에 대한 남다른 접근법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쌓인 기술력과 자본을 무기로 후발 주자들을 따돌리고 있다.
2000년대까지는 중국 본토에서 희귀 광물자원을 채취하고 가공했다. 희귀한 광물을 추출하려면 보통 강력한 화학약품을 사용하거나 고온의 공정을 거치는 탓에 대량의 독성 폐기물이 발생한다. 미국은 1980년대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희토류를 생산했으나 환경 문제로 손을 뗐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미진했던 중국은 과감하게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자국 내 희귀 금속 관련 산업을 발전시켰다. 미국이나 유럽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원칙을 지키며 희토류를 생산해도 가격이 비싸지면 자국 기업들에게도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중국도 최근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의식이 개선되면서 자국 내 생산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리튬 산지인 장시성 이춘시의 경우 지방 정부가 작년말 융싱재료와 안중주식 등 주요 리튬 공장을 잠정 폐쇄했다. 공장 폐수가 지역 주민들의 식수원인 진강을 오염시켰다는 이유에서다. ②수십 년 시장 독점하며 기술력 개발
베트남, 브라질, 인도 등 여러 국가가 뒤늦게 희토류 시장에 새로 진입했으나 중국 기업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십 수년간 환경 문제 등으로 희귀 금속 관련 사업을 축소했던 영·미와 호주 광업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을 장악한 것도 기술력 때문이다. 니켈 처리에 필요한 고압산침출(HPAL) 공정은 극도의 고온 및 고압에 의존해야 하는 탓에 장비 손상이 잦고 수리도 쉽지 않아 많은 기업이 이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중국 국영 기업의 자회사 ENFI와 닝보리친 등 기업들은 기술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다.다른 희귀 광물들도 마찬가지로 중국 기업의 기술이 가장 앞서있다. 희귀 광물이란 단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 이들 광물의 절대적·상대적 수요량은 많지 않다.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14억 인구의 세계 최대 자원 소비시장인 중국을 따라올 국가는 많지 않다. 예컨데 전기차 시장 급성장으로 수요가 많아진 모터용 자석 소재 네오디뮴도 전세계 시장 규모가 지난해 기준으로 9조원에 못미친다. 네오디뮴은 미국 최신예 전투기 F-35의 엔진에도 사용되는 등 자석을 사용하는 첨단 제품에 널리 쓰인다. 중국은 네오디뮴 추출·분리 공정 기술은 물론 합금 제조 방법 등을 전략 기술로 지정해 수출을 금지·제한하고 있다.
③자본과 기술을 무기로 글로벌 진출
중국은 해외 광산을 매입하고 인도네시아, 짐바브웨 등 광물이 풍부한 국가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중국몰리브덴그룹(CMOC)을 필두로 콩고민주공화국 주요 코발트 광산 7곳 중 최소 4곳을 중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짐바브웨에선 중국 기업 '저장 화우 코발트'가 이달 리튬 채굴 및 가공을 시작했다. 지난해 4월 호주 광물업체 프로스펙트 리소스로부터 4억2200만달러에 광산을 인수한 뒤 9개월 만에 가공 공장까지 설립했다. 중국 간펑리튬은 지난해 아르헨티나 광산 회사 리테아를 인수했다. 페루에선 중국 우광자원(MMG)이 2014년 라스밤바스 광산을 사들여 현지에서 연간 40만t의 구리를 생산하고 있다. 구리는 희귀 금속은 아니지만, 최근 유럽연합(EU)이 전략 원자재로 지정하는 등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중국 기업들의 행태는 해외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영국 비영리단체 '비즈니스 및 인권 자원센터'는 지난 6일 재생에너지에 사용되는 광물 채굴·가공과 관련된 중국 투자기업들에서 수십 건의 노동 관련 문제 및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해 공개했다. 코발트, 구리, 리튬, 망간, 니켈, 아연, 알루미늄, 크롬, 희토류 원소 등 9개 광물 관련 중국 기업들이 조사 대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초기 탐사 및 허가에서 채광 및 가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102건의 남용 혐의가 발견됐다. 비영리단체들의 조사 결과 문제 사례는 인도네시아가 27건으로 가장 많았고 페루 16건, 콩고민주공화국 12건, 미얀마 11건, 짐바브웨 7건 순이었다. 이들 광물 공장의 오염물질 배출로 주변 주민들의 식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사례가 포함됐고, 3분의 2 이상은 인권 침해 등 노동과 관련된 문제였다. 보고서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한국과 달리 중국의 경우 자국 기업의 해외 활동에 대한 규제가 부족하다"며 "중국 기업들이 진출한 신흥국들 역시 인권·환경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약하고 관료들의 부정부패도 잦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가공 산업이 관건...자본과 기술력도 중국이 월등
주요 선진국 기업들이 산업 원자재 갈륨과 게르마늄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가 다음달부터 수출을 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의 대(對)중국 수출을 제한한 데 대한 보복이다. 게르마늄은 고성능 컴퓨터 반도체, 광섬유 통신, 야간 투시경, 인공위성용 태양전지의 핵심 소재다. 갈륨은 반도체 등의 전송 속도와 효율을 높이기 위한 화합물 제조에 쓰이며, TV와 휴대전화 충전기, 태양광 패널, 레이더, 전기차에 많이 사용된다. 한국은 중국산 갈륨과 게르마늄을 전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작년에만 1억7120만달러 규모 게르마늄과 갈륨을 수입했다. 29도의 온도에서 액체로 변하는 갈륨은 알루미늄 정제 부산물이며, 게르마늄 역시 아연 제련소의 부산물로 생산되거나 석탄에서 추출한다. 비교적 흔한 금속이지만 희토류와 마찬가지로 중국 의존도가 높다.2010년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 통제를 하자 전 세계가 화들짝 놀라 희귀 광물자원 공급망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했지만, 아직도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의문이다. 중국의 인권·환경에 대한 남다른 접근법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쌓인 기술력과 자본을 무기로 후발 주자들을 따돌리고 있다.
갈륨·게르마늄 80%를 중국이 생산
갈륨과 게르마늄은 물론 전기차 시대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 등 희소 광물 원자재들이 중국에만 유독 많은 것은 아니다. 리튬은 칠레에, 코발트는 콩고민주공화국(DRC), 니켈은 인도네시아 등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최근엔 수심 4000~6000m 해저에 널린 니켈과 망간 등을 본격적으로 채굴하기 위해 각 국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인간의 달 착륙 50주년을 맞은 2019년 “금세기 안에 달 표면에서 희토류 채굴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광석을 채굴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광물 원석에서 광물자원을 뽑아내 금속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단계가 관건이다. 이 단계에서 중국의 장악력이 절대적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2년 세계 희토류 광산 생산량의 70%를 중국이 차지했으며, 미국, 호주, 미얀마, 태국이 그 뒤를 이었다. 리서치 회사인 아담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은 희토류 광석을 제조업체가 사용할 수 있는 재료로 가공한 제품 생산 능력의 85%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호주나 영국의 광산 기업들도 중국 가공 기업에 지분 투자하거나 중국에 직접 공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왜 중국이 희귀 광물·금속자원 시장 지배하나
중국이 희귀 금속·희토류 시장을 지배하는 이유는 물량이 풍부하고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원리에 따른 결과다. 그렇다면 왜 중국이 싸게 많이 만들까. ①환경과 인권에 대한 남다른 접근2000년대까지는 중국 본토에서 희귀 광물자원을 채취하고 가공했다. 희귀한 광물을 추출하려면 보통 강력한 화학약품을 사용하거나 고온의 공정을 거치는 탓에 대량의 독성 폐기물이 발생한다. 미국은 1980년대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희토류를 생산했으나 환경 문제로 손을 뗐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미진했던 중국은 과감하게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자국 내 희귀 금속 관련 산업을 발전시켰다. 미국이나 유럽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원칙을 지키며 희토류를 생산해도 가격이 비싸지면 자국 기업들에게도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중국도 최근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의식이 개선되면서 자국 내 생산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리튬 산지인 장시성 이춘시의 경우 지방 정부가 작년말 융싱재료와 안중주식 등 주요 리튬 공장을 잠정 폐쇄했다. 공장 폐수가 지역 주민들의 식수원인 진강을 오염시켰다는 이유에서다. ②수십 년 시장 독점하며 기술력 개발
베트남, 브라질, 인도 등 여러 국가가 뒤늦게 희토류 시장에 새로 진입했으나 중국 기업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십 수년간 환경 문제 등으로 희귀 금속 관련 사업을 축소했던 영·미와 호주 광업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을 장악한 것도 기술력 때문이다. 니켈 처리에 필요한 고압산침출(HPAL) 공정은 극도의 고온 및 고압에 의존해야 하는 탓에 장비 손상이 잦고 수리도 쉽지 않아 많은 기업이 이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중국 국영 기업의 자회사 ENFI와 닝보리친 등 기업들은 기술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다.다른 희귀 광물들도 마찬가지로 중국 기업의 기술이 가장 앞서있다. 희귀 광물이란 단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 이들 광물의 절대적·상대적 수요량은 많지 않다.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14억 인구의 세계 최대 자원 소비시장인 중국을 따라올 국가는 많지 않다. 예컨데 전기차 시장 급성장으로 수요가 많아진 모터용 자석 소재 네오디뮴도 전세계 시장 규모가 지난해 기준으로 9조원에 못미친다. 네오디뮴은 미국 최신예 전투기 F-35의 엔진에도 사용되는 등 자석을 사용하는 첨단 제품에 널리 쓰인다. 중국은 네오디뮴 추출·분리 공정 기술은 물론 합금 제조 방법 등을 전략 기술로 지정해 수출을 금지·제한하고 있다.
③자본과 기술을 무기로 글로벌 진출
중국은 해외 광산을 매입하고 인도네시아, 짐바브웨 등 광물이 풍부한 국가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중국몰리브덴그룹(CMOC)을 필두로 콩고민주공화국 주요 코발트 광산 7곳 중 최소 4곳을 중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짐바브웨에선 중국 기업 '저장 화우 코발트'가 이달 리튬 채굴 및 가공을 시작했다. 지난해 4월 호주 광물업체 프로스펙트 리소스로부터 4억2200만달러에 광산을 인수한 뒤 9개월 만에 가공 공장까지 설립했다. 중국 간펑리튬은 지난해 아르헨티나 광산 회사 리테아를 인수했다. 페루에선 중국 우광자원(MMG)이 2014년 라스밤바스 광산을 사들여 현지에서 연간 40만t의 구리를 생산하고 있다. 구리는 희귀 금속은 아니지만, 최근 유럽연합(EU)이 전략 원자재로 지정하는 등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중국 기업들의 행태는 해외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영국 비영리단체 '비즈니스 및 인권 자원센터'는 지난 6일 재생에너지에 사용되는 광물 채굴·가공과 관련된 중국 투자기업들에서 수십 건의 노동 관련 문제 및 환경오염 실태를 조사해 공개했다. 코발트, 구리, 리튬, 망간, 니켈, 아연, 알루미늄, 크롬, 희토류 원소 등 9개 광물 관련 중국 기업들이 조사 대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초기 탐사 및 허가에서 채광 및 가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102건의 남용 혐의가 발견됐다. 비영리단체들의 조사 결과 문제 사례는 인도네시아가 27건으로 가장 많았고 페루 16건, 콩고민주공화국 12건, 미얀마 11건, 짐바브웨 7건 순이었다. 이들 광물 공장의 오염물질 배출로 주변 주민들의 식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사례가 포함됐고, 3분의 2 이상은 인권 침해 등 노동과 관련된 문제였다. 보고서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한국과 달리 중국의 경우 자국 기업의 해외 활동에 대한 규제가 부족하다"며 "중국 기업들이 진출한 신흥국들 역시 인권·환경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약하고 관료들의 부정부패도 잦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