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혁신과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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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제군들, 우리는 지금 돈이 없으니 생각을 해야 할 때다.”
“돈에 대한 제약이 가장 심해서 문제 해결 수단이라고는 창의성과 상상력이 전부이던 팀들이 오히려 가장 성공적인 사업 결정을 내렸다.”앞의 말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연설로 알려져 있고, 두 번째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이야기다. 이번 정부는 예전과 달리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모태펀드 등 민간 모험자본을 대신한 정부 재정 투입을 상당액 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긴 방향으로 봤을 때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자본시장 크기에 비춰 정부 재정에 의한 스타트업 투자 의존도는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왜 민간은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여러 투자 유인 정책에도 투자를 하지 않을까? 잘 모르는 베트남, 브라질 펀드에는 돈이 몰리고 암호화폐 투자 등에도 많은 돈이 투입되는 데 비해 비슷한 위험도의 스타트업에는 투자를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대수익률의 문제라면 최근 스타트업 창업자의 대박 신화가 TV 드라마로도 방영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어느 정도의 공감대는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 생각으로는 첫째, 펀드 혹은 가상자산은 매일, 매시간 평가가 제공됨으로써 투자자의 투자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동일한 위험에도 펀드 등 상장시장에 대한 투자는 활성화돼 있다. 둘째, 스타트업은 회사 자체 및 투자 기회에 대한 정보 비대칭성이 너무 커 기회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투자가 미진하다. 셋째, 비상장 주식은 투자자가 필요한 시점에 투자 회수를 할 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민간의 스타트업 투자가 아주 미미한 수준인 것 같다.자본(돈)으로만 혁신을 만들 수 있을까? 분명히 자본으로 누군가 성취한 기술(특허)은 살 수 있겠지만 혁신의 문화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자본가의 자본이 아이디어와 열정과 혁신을 가속화하는 역할은 할 수 있지만 불타오르는 장작 자체는 아니지 않을까. 혁신은 아이디어와 행동으로 시작되며 사회적으로 수용돼야 성공한다. 많은 혁신 시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 실패한 시도들이 개인 차원의 비용으로만 끝난다면 그 사회는 아직 새로운 시도와 혁신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다. 말로는 ‘일신우일신’이라고 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사회 분위기를 돈으로 바꿀 수는 없다.
자본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다면 국가혁신지수에서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최고 점수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원(자본)이 척박하기에 생존을 위한 혁신에 지속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아마존 창업자와 처칠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