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反이민 극우 돌풍…네덜란드 연정 깨졌다

'정치 지형' 바꾼 난민 문제

올해 망명 신청 7만명 넘을 듯
집권당 '입국 제한' 반대 부딪히자
뤼터 총리 '해체 카드' 꺼내들어

이민자 범죄 등 유권자 반감 활용
獨·伊·오스트리아도 극우 득세
사진=연합뉴스
유럽의 선진국에서 이민자 문제가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나면서 선진국들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받고 있는데, 범죄 증가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난민까지 늘어난 유럽에서는 이 문제가 정치 지형을 바꾸는 핵심 동인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다. 여러 유럽 국가에서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극우 성향 정당들이 눈에 띄게 세를 불리고 있고, 네덜란드 연립정부(연정)는 난민 정책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집권 1년 반 만에 붕괴했다.

네덜란드 총리의 연정 무너진 이유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부유한 국가로의 이민 증가가 국민들 사이에서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한 상징적인 사건이 지난 7일 벌어진 네덜란드 연정 붕괴라고 WSJ는 짚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연정 파트너들은 이민 정책과 관련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으며,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현재 네덜란드 연정에는 뤼터 총리가 이끄는 중도 우파 성향의 자유민주당(VVD)과 기독민주당(CDA), 보수 성향의 기독교연합당(CU), 진보 성향의 D66 등 4개 정당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연정은 2021년 3월 총선 이후 장장 10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2022년 1월 가까스로 출범했지만, 그 후로 18개월도 지나지 않아 붕괴하게 됐다.

네덜란드 연정이 무너진 이유는 난민이다. 올해 네덜란드에는 유럽 ‘난민 위기’가 있었던 2015년 이후 최대 규모의 이민자들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네덜란드로의 망명 신청 건수는 2021년 3만6620건에서 2022년 4만7991건으로 늘어났고, 올해 말까지 난민 유입 규모는 7만 명 이상으로 예상된다. 이에 VVD는 지난 5일 네덜란드로 들어와 있는 전쟁 난민의 가족들을 월 200명까지만 입국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기독교 교리에 충실한 CU와 좌파 정당인 D66은 VVD의 제안에 완강히 반대했다. 다음 총선 예상 시점으로는 오는 11월 중순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反이민 세력 득세하는 유럽·북미

네덜란드의 최장수 총리인 뤼터 총리는 13년 동안 재임하며 ‘테플론(타격을 입지 않는) 마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럽연합(EU)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로 꼽히는 그가 난민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집한 건 최근 유럽에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부상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 있다는 평가다.

난민을 비롯해 이민 전반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게 외신의 분석이다. 범죄 증가, 주거비 상승 등을 증가한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유권자가 늘고 있다. 극우 정당이 들어선 핀란드는 불법 이민 유입을 막기 위해 러시아와의 국경에 201㎞ 길이의 철책을 세웠다. 그리스 역시 튀르키예와 맞댄 국경에 144㎞ 길이로 장벽을 올리는 중이다. 극우 세력은 이미 집권에 성공한 이탈리아 등 외에도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정치적 기반을 넓히고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이달 창당 10년 만에 최고 지지율(20%)을 기록했고, 오스트리아에서도 자유당(FP)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최근 알제리계 10대 소년의 사망 사건에서 촉발된 대규모 폭력 시위가 있었던 프랑스에선 국민 60%가 이민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북미에서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인의 절반 이상은 연 50만 명 규모의 난민 수용 목표가 과도하다고 우려했고, 미국에선 이민자 규모에 대한 만족도가 지난 2월 10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이밖에 숙련된 이민자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호주와 뉴질랜드에선 전체 도시 인구 1%에 해당하는 이민자가 유입될 경우 주거비가 평균 1% 오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기업들의 로비로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이민자가 폭증하면, 이에 반대하는 포퓰리스트들이 세를 불려 이민자 유입 규모가 줄어드는 주기가 반복되는 경향이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WSJ 집계에 따르면 올해 선진국의 이민자 규모는 코로나19 이전 대비 약 8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