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기다려지는 이유, 여름 클래식 축제로 떠나볼까

[arte] 이은아의 머글과 덕후 사이
휴가의 계절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는 더위를 피해 맛과 멋을 찾아 떠난다. 6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오케스트라 정규 시즌을 마친 ‘비시즌' 기간을 맞아 예술인과 애호가들은 늘 만나던 콘서트홀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조우한다. 각종 ‘페스티벌'이 열리는 특별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휴가지를 결정하기 어려운 클래식 음악 덕후에게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클래식 음악 축제는 휴가지 선정의 좋은 기준이 된다. 주중과 주말 내내 독주, 실내악, 교향곡, 오페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차가운 도시 오케스트라의 반전 - 베를린 발트뷔네와 보스톤 탱글우드

엄격하고 세밀한 컨트롤의 음악을 선보이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매년 6월 마지막 주 일요일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원형극장 ‘발트뷔네'에서 시즌을 마무리한다. 한 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공연인 만큼 매년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가장 뛰어난 연주자들과 함께 숲속 원형 극장에 오른다. 관객들은 가장 편한 차림으로 원형극장을 찾는다. 준비한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면 항상 파울 린케의 ‘베를린의 공기'를 연주하는데 이 때만큼은 엄격한 베를리너들도 신나게 퍼져버린다(?!). 후렴 부분은 관객도 휘파람을 불며 함께한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이 악단을 이끈 사이먼 래틀이 임기의 마지막 ‘베를린의 공기'를 연주하는 영상으로 발트뷔네의 흥겨움을 엿볼 수 있다. 언젠가는 꼭 여름 베를린으로 떠나 발트뷔네를 직관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하는 영상이다. 뉴잉글랜드의 전통을 간직하는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여름이 되면 도심에서 약 2시간가량 떨어진 탱글우드로 떠나 음악축제를 연다. 매년 6월 말부터 두달간 음악이 멈추지 않는 숲으로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불러모은다. 올해도 탱글우드에서는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 다닐 트리포노프, 힐러리 한 등의 연주가 예정되어 있고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는 지휘, 대담, 마스터클래스까지 종횡무진 활약한다. 현지인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연인, 가족, 친구가 탱글우드에서 잊을 수 없는 여름밤을 보낸다. 두달간의 탱글우드 일정을 참고해 미국 여행 계획을 세운다면 명실상부 ‘찐 클덕'으로 거듭날 수 있다.


별들이 쉬지 않고 흘러 흘러 빛을 뿜는 축제의 은하수 - 잘츠부르크, 베르비에, 루체른

안드리스 넬손스는 탱글우드 일정이 끝나면 보스톤 심포니를 이끌고 잘츠부르크로 날아간다. 키릴 페트렌코와 베를린 필하모닉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많은 음악 페스티벌 중 ‘근본'으로 손꼽히는 잘츠부르크 여름 페스티벌을 위해 별들이 모두 모인다. 아우구스틴 아델리히, 안네 조피 무터 등 정상급 연주자들도 잘츠부르크에서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선다. 잘츠부르크는 오케스트라 연주 프로그램도 엄청나지만 오페라 무대들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가장 힙한 프로덕션이 총출동해 가장 실험적인 연출로 역사적인 공연을 수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약 40일간 진행되는 콘서트, 오페라, 연극 등 ‘위대한 예술'을 표방한 200여개의 스테이지를 보기 위해 매년 80여개국에서 30여만명이 몰려든다고 하니 명실상부 최고의 여름 음악 축제라 할 수 있다.

알프스 산자락 작은 마을에서 고즈넉하게 펼쳐지는 음악축제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젊은 음악가들이 세계적인 거장과 만나 음악적 교감을 이루는 컨셉이다. 7월 중순부터 말까지 약 2주간 연주와 마스터클래스가 이어진다. 1944년 출생의 마리아 조아오 페레스부터 1994년 출생의 조성진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거장들이 연주한다. 유자 왕, 예브게니 키신, 재닌 잰슨,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등 덕후와 머글을 가리지 않고 인지도를 쌓은 연주자들이 베르비에를 찾는다.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라는 비상근 교향악단도 조직한다. 특히 올해 30주년을 맞아 준비한 갈라 연주회에서는 미하엘 플레티뇨프, 예핌 브론프만, 조성진, 다닐 트리포노프 등 10명의 연주자들이 나누어 라흐마니노프의 10개 프렐류드를 연주한다. 덕후에게 ‘베르비에 갈라'는 맷 갈라보다 핫한 꿈의 무대가 아닐 수 없다. 알프스 산자락에서의 축제는 8월 초의 루체른 호숫가가 이어받는다. 베를린 필하모닉에도, 비엔나 필하모닉에도 앞선다는 탈지구급 오케스트라(?)로 명성을 쌓았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배출한 음악축제, 루체른 페스티벌이다. 2003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시작한 이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의 신기원을 열며 덕후의 귀를 황홀하게 해주었다. 올해는 리카르도 샤이, 야닉 네제 세갱 등이 이 ‘오케스트라 드림팀'을 지휘하고 마리아 조아오 페레스, 비아트리스 라나가 협연한다. 다닐 트리포노프, 비킹구르 올라프슨 등이 독주 무대도 갖는다. 안드리스 넬손스와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키릴 페트렌코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역시 루체른으로 넘어가 루체른 호수를 음악으로 수놓을 예정이다.


한국의 발트뷔네, 평창 뮤직텐트

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들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연주자들도 매년 여름 평창에 모인다. 대관령음악제를 위해서다. 흡사 발트뷔네를 연상시키는 ‘평창 뮤직텐트'에서 이들은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탈한국급(?) 연주를 선보인다. 유럽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다 현재는 교수가 되어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조성현(플루티스트), 김두민(첼리스트) 등을 알펜시아 편의점에서 마주치는 순간은 머글과 덕후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다. 대관령음악제는 2018년부터 손열음 음악감독이 이끌고 있다. 매년 프로그램도, 참여 연주자도 다채로움을 더하니 매년 여름 휴가지로 평창을 생각해봄직하다. 언젠가 ‘베를린의 공기'처럼 대관령음악제를 상징하는 곡이 생기기도 기대해 본다.
사진 = 발트뷔네..가 아니라 평창 뮤직텐트
사진 = 루체른 호수…가 아니라 대관령음악제가 펼쳐지는 알펜시아 앞 호수.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