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처럼 따라야하는 엄마… '공포 거장' 애스터 3번째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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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리뷰어떤 사람들에게 가족은 비극이다. 부모나 자식을 향한 애정이 집착과 통제로 변질될 때 더욱 그렇다.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주인공인 '보'(호아킨 피닉스 분)가 바로 그런 사례다.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과 빗나간 애정을 받는 보는 끊임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어머니의 높은 기준에 차마 못 미친다는 죄책감,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죄책감 말이다.
죄책감은 피해망상, 편집증, 불안장애로까지 이어진다. 이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보는 어머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으로 가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상할 정도로 잇따라 일어나는 사건사고 때문이다. 우연히 만나게 된 수상한 부부와 '유사 가족 놀이'를 하는가하면, 숲 속의 유랑극단을 만나 환상 속 세계를 엿보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느낌이 든다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영화 개봉 직후 온라인에 "도대체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게 뭐냐", "보는 내내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는 후기글이 쏟아졌으니.
기괴하고 난해한 이야기를 만든 감독은 바로 아리 애스터다. '미드소마' '유전' 단 두 편의 영화만으로 '차세대 호러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천재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공포영화, 그 이상이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소재, 그리고 이를 풀어나가는 실험적 연출 덕분에 그의 영화는 '공포와 예술의 결합체'로 평가받는다.
그런 애스터가 "가장 나다운 영화"라고 말한 게 바로 '보 이즈 어프레이드'다. 단번에 이해가 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애스터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진행한 간담회와 인터뷰에서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 '열쇠'를 줬다.우선 '가족'이란 소재다. 그는 "이 영화는 방대한 유대계 농담이며, 내가 자란 유대인 가정은 어머니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신처럼 절대적인, 어쩌면 극성맞다고 할 정도의 모성을 강조하는 강박적인 분위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족은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요새"라는 애스터의 말 속에서도 이런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강박적 분위기는 보의 아이 같고, 수동적인 모습을 강화한다. 애스터는 보라는 캐릭터에 대해 "성장이 정지된 인물"이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가둔 채 청소년 같은 심리상태에 머무른 인물",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들과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것들이 내면에 쌓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조커'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피닉스의 열연은 이런 보의 정체된 모습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결국 이 영화는 전통적인 모성의 가치를 기괴하게 비틀고, 그 속에서 정체되고 뒤틀린 한 남자의 심리상태를 3시간 동안 밀도 높게 풀어낸 작품이다. 장르는 호러지만 일반적인 공포영화와는 다른, 가장 '아리 애스터다운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